Village Homes의 사계절
Village Homes의 사계절을 느끼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지중해성 기후라고 해서 캘리포니아가 늘 똑같은 날씨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작은 마을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향기와 색깔로 우리를 맞았다. 2월의 매화향, 4월의 등나무, 5월의 베르가못 향기, 10월의 감 익는 냄새, 12월의 레몬 내음. 각각의 계절이 코끝에 먼저 닿았다.
처음 Village Homes에 발을 들였을 때, 마치 동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격자형 도로 대신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이어졌고, 높은 담장 대신 열린 정원들이 서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엘리의 빨간 자전거를 따라 그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면, 매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 집 앞에선 거대한 닭장이, 어느 모퉁이엔 아무도 없는 비밀 놀이터가 숨어있었다.
"Look! Chickens!"
닭장 앞에 멈춰 선 엘리가 손가락으로 하나둘 세기 시작한다.
"One, two, three... seven!"
그리고는 바닥에 놓인 달걀도 센다.
"Four eggs!"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상. 도시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흙냄새와 풀냄새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집집마다 가꾸는 작은 텃밭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어느 집은 대파를, 어느 집은 토마토를, 또 어느 집은 콩을 키웠다.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는 콩 넝쿨을 보며 엘리가 "콩나무!"라고 외칠 때마다, 정말 거인이 나타날 것만 같은 상상에 빠지곤 했다.
5월의 어느 오후였다.
평소처럼 산책을 하던 중, 갑자기 강렬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처음엔 누군가의 향수인가 싶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더 짙어지는 그 향기의 출처를 찾아 나섰다. 엘리도 코를 킁킁거리며 "What's that smell?"을 연신 물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Bergamot'이라는 작은 표지판. 그리고 누구든 편하게 따서 맡아보라는 그 사소한 친절.
아, 베르가못! 핸드크림이나 향수에서만 맡아봤던 그 향이 이렇게 생생할 줄이야.
엘리가 발돋움을 하며 잎에 손을 뻗었다.
"Can I touch?"
조심스럽게 잎을 만진 아이가 손가락 냄새를 맡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잎사귀 하나를 살짝 비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5월의 캘리포니아가 손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강렬하면서도 싱그러운, 쓰면서도 달콤한, 형용할 수 없는 그 향. 화장품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그리고 살아있는 베르가못의 향기였다.
그날 이후로 그 나무는 우리의 '향기 나무'가 되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지나갈 때마다 엘리가 "Smell!"이라고 외치며 달려갔고, 우리는 매번 잎사귀를 살짝 만져 그 향을 손끝에 묻혀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손에서 베르가못 향이 났다.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엘리를 재우면서도, 그 향기가 은은하게 따라다녔다. 그 향기 하나로 타지에서의 여러 사소한 서러운 일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4월의 등나무도 잊을 수 없다.
Village Homes 중앙 공원 옆의 한 집의 등나무는 연보라색 꽃송이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하나둘 떨어졌고, 엘리는 그 아래서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꽃잎을 애써 잡으려고 뛰어다녔다.
그 보라색 빛이 얼굴에 비치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향기는 베르가못처럼 강렬하지 않았지만, 은은하고 부드러워서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들었다. 쨍쨍한 햇빛에서 바라본 천연색의 보라색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풍경이었다.
매일 이 길을 걷다 보니 엘리가 변해갔다.
나뭇가지는 언제나 손에 들려있었다. 그것은 때로 마법 지팡이가 되고, 검이 되고, 낚싯대가 되었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쪼그려 앉아 "Kitty, come here"를 속삭였고, 민들레를 발견하면 반드시 홀씨를 불어야 했다.
"후~"
하얀 홀씨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엘리의 눈빛은 진지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되어 "Time to go home"이라고 하면, 엘리는 언제나 "Five more minutes!"를 외쳤다. 석양이 Village Homes의 구불구불한 길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우리는 조금씩 집으로 향했다. 엘리의 빨간 자전거가 앞서가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가끔은 이웃이 담장 너머로 레몬이나 오렌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 레모네이드를 만들었다. 신선한 레몬즙에 설탕을 조금, 그리고 찬물을 부으면 캘리포니아의 그 계절이 컵 안에 담겼다.
"Mommy, tomorrow bike again?"
잠들기 전 엘리가 물었다.
"그래, 내일도 자전거 타자."
"향기 나무도 가?"
"그럼, 향기 나무도 가지."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베르가못 향기가 실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계절의 Village Homes는 그렇게 우리의 코끝에, 손끝에,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한국에 온 이후, 더 이상 Village Homes 같이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건물은 네모반듯하게 올라와 있고, 바닥은 콘크리트와 벽돌, 아스팔트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추억이 있으니까. Village Homes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매일 작은 모험을 떠났던 날들. 베르가못 향기에 취하고, 등나무 그늘에서 쉬고, 민들레 홀씨를 불며 소원을 빌었던 시간들.
그곳에는 엘리와 나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다.
"엘리, 혹시 데이비스에서 구불구불한 길 걸었던 거 기억나?"
"음... 잘 모르겠어!"
비록 애석하게도 엘리는 더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