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누수공사에 고통받던 우리들
4월, 여느 때 같으면 맑은 날씨를 만끽할 데이비스의 봄.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던가. 우리 가족의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여보, 오늘도 늦어?"
남편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는 THEMIS Bar 교재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강의 목록이 빼곡했다. 100일 남짓 남은 Bar 시험. 거기다 5월 기말고사까지. 2월부터 Bar 요구조건을 확인한다, 지원서를 미리 써둔다 하면서 분주하더니, 4월부터는 아예 집이 아닌 King Hall이 그의 집이 되어버렸다.
"도시락 두 개 싸줄게. 학교에서라도 제대로 먹어."
그렇게 나는 졸지에 고시생 뒷바라지 아내가 되었다. 엘리는 아빠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우리 모녀는 사실상 '기러기 가족'이 되어버렸다. 아니,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기러기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말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아래층에서 사건이 터졌다.
"물이 샜대요. 2월 그 큰 비 때문에."
이상하게 아랫집이 조용해서 의아해하던 찰나, Leasing office 매니저가 지나가길래 물어보니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래층 이웃은 이미 집을 나가 호텔을 전전하고 있다고.
나중에 남편이 설명하길, 누수는 중대하자에 해당해서 임대인이 호텔 숙박비를 대줘야 한다고. 그리고 최악의 경우 소송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미국에서는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하니까 아파트를 관리하는 회사가 합의금을 꽤 줬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법대생 남편이 있으니 이럴 때 쓸모가 있기는 했다.
사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2월에 우리 집에도 물이 샜었다. 창문 틈으로 빗물이 한 두 방울 씩 뚝뚝 떨어졌던 것. 다행히 maintanance를 요청하니 바로 chief handyman, 샐 아저씨가 와서 간단히 해결해줬다.
여하튼, 1층 집에 살던 사람들이 오지 않은 채 짐만 계속 방치되어 있기를 약 2달. 아직 이사를 가지도, 그리고 새로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길래 '아직 해결이 안됐나보다'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지나쳤다. 그런데 그게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줄이야.
(집 창틀에서 비새는 사진)
4월 초, 이번에는 Leasing office 매니저가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
'아 이번에는 진짜 우리 잘못 없지?'
세탁기 사건 이후로 이 사람들이 우리 집문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천장 공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래층 누수 때문에. 조금 시끄러울 수 있는데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우리 집은 괜찮아요?"
"다행히 당신 집은 문제없어요. 천장 나무가 썩어서 1층으로 물이 고인 거라서요."
공사는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배운 게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기간에 최소 2배는 곱해야 한다는 것. 예상대로 공사는 2주를 넘게 끌었다. 캘리포니아답지 않게 4월에도 비가 내렸고, 그 때문에 공사는 계속 지연됐다.
드르르르륵— 쿵! 쿵!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소리가 났다. 도저히 참기 힘들정도로 시끄러운 전기톱과 드릴 소리, 좀 익숙해질 만 하면 사람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망치질 소리까지.
천장에서 떨어지는 건 단지 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화장실 쪽에서 공사 소리가 들릴 때는 갑자기 죽은 바퀴벌레가 환풍기에서 뚝 떨어졌다. 천장을 아예 뜯고 새로 나무를 덧대려고 했는지 날이 좋을 때면 환풍구에서 햇볓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다음으로 안방과 작은 방 공사가 진행될 떄면 천장에서는 하얀 가루와 조약돌만한 나무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러다 천장 무너지는 거 아니야?"
나는 불안해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미국 아파트의 나무 천장.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한국 아파트는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단열재도 빵빵하게 넣어 짓는다. 한반도의 극한 날씨를 견뎌야 하니까.
"대체 왜 미국은 나무로 집을 짓는 거야?"
미국애들은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책도 안읽었나..
ISTJ인 남편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왜' 나무로 짓는지를 설명해줬다.
미국은 목재가 풍부하고, 건설 비용도 콘크리트의 절반 정도로 저렴하다고. 공사 기간도 3-6개월로 콘크리트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지진대에서는 목조가 유연하고 콘크리트보다 가벼워서 지진의 충격을 덜 받는단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궁금증이 커졌다.
"그런데 산불 위험은?"
"그래서 캘리포니아 보험료가 비싼 거지."
아, 그래서 월세에 보험료까지 더하면 이 50년이 넘은, 나무로 지은, 단열이 1도 안되는 아파트가 3,000달러가 나오는구나. 환율까지 생각하면 정말...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단열도 안 되고, 방음도 안 되고."
여름엔 에어컨을 풀가동해도 더웠고, 겨울엔 히터를 켜도 추웠다. 집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사가 끝나면 조용해지겠지, 남편도 Bar 시험만 끝나면 좀 여유로워지겠지. 그렇게 견디려고 애썼다.
하지만 정말 최악은 따로 있었다. 공사 일주일 째, 천장에서 요란하게 소리가 울려퍼지던 그 시점에.
우리 가족은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