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데이비스의 Jack the Ripper

15년간 살인사건 하나 없던 원더랜드의 환상이 깨지다

by 유지니안

4월 말의 Davis는 평소와 달랐다. 2023년 봄은 유난히 춥고 비가 많이 왔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 많았고, 캘리포니아답지 않게 음울했다. 마치 살인사건을 예고하는 것처럼.


4월 29일 토요일 아침.


DPNS 부모 채팅방이 폭발했다. 자고 일어나니 메시지가 137개. 보통 이 정도면 누가 애 픽업 못 한다거나, Lost & Found 알림이거나, 아니면 Potluck 메뉴 논의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Davis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대요."

"Central Park에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해요."

"우리 애들 공원에 보내도 되는 거예요?"

"학교에서 이메일 왔어요. Check your email!"


"여보! 일어나! Davis에서 살인사건 났대!"

잠에서 덜 깬 남편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DPNS 채팅창, UC Davis 알림, 지역 뉴스... 모든 곳이 난리였다.

"Central Park... 우리가 진짜 자주 가는 그 공원이잖아."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토요일마다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 곳. 수요일 저녁이면 Picnic in the Park로 음악과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곳. 루시와 엘리가 음악에 맞춰 춤도 췄던 그 곳이다. 데이비스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드칩이 아닌 고무 우레탄이 깔려 있어서, 엘리가 넘어져도 안심이었던 놀이터. 그곳에서 살인이라니.

KakaoTalk_20250821_132659196.jpg
KakaoTalk_20250821_131401639.jpg


"Davis가... Davis가 이렇게 안전한 도시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Davis는 2008년 이후 15년 동안 단 한 건의 살인사건도 없었던 도시였다.

15년. 데이비스는 그런 도시였다. UC Davis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고, 가족 단위 거주자가 대부분이고, 범죄율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 그래서 우리도 이곳을 선택했다. 안전한 곳에서 엘리를 키우고 싶어서.


David Breaux, https://stanfordmag.org/contents/compassion-s-champion

피해자는 David Breaux. 50세 남성. 'Compassion Guy'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요?"

DPNS 엄마 중 한 명이 물었다.

"Central Park 벤치에 늘 앉아있던 분이에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What does compassion mean to you?'라고 묻던..."

나도 그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엘리와 도서관 갔다가 공원을 지나갈 때, 그가 벤치에 앉아 노트를 들고 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Stanford 대학을 졸업하고 2009년부터 Davis에서 살았다고 했다. Homeless였지만, 그는 Davis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5월 1일 월요일 새벽.


잠에서 깨니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DPNS 채팅창이 또 폭발했다.

"또 일어났어요!!!"

"Sycamore Park! UC Davis 학생이래요!"

"20살, Karim Abou Najm이라는 학생이래요. 어제 밤 Undergraduate Award Ceremony 끝나고 집에 가다가..."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Sycamore Park? 우리 아파트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꽤 큰 놀이터가 있어서 엘리와 자주 갔던 곳이다. 오리들이 노니는 작은 연못, 잔디밭에서 뛰어놀던 엘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Central Park보다 훨씬 가까웠다.


피해자는 Computer Science 전공의 UC Davis 3학년생. 어제까지만 해도 상을 받고 기뻐하던 청년이었다. 학교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 11시경, 평소처럼 걷던 그 길에서 변을 당했다.

"그 학생 아버지가 UC Davis 교수래요."

"우리 아이 친구 오빠예요. 정말 착한 학생이었대요."

"왜 하필 학생을..."

채팅창에 슬픔과 분노가 뒤섞였다. 이제는 정말 무섭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이거... Serial killer 아니야?"

누군가 채팅창에 썼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4일 만에 두 명이 죽었다. 같은 방식으로. 칼로.




그리고 5월 2일 화요일 새벽.

이번엔 내가 먼저 뉴스를 봤다. 새벽 2시, 엘리가 칭얼대서 물을 주러 일어났다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Davis: Third stabbing victim in critical condition"

세 번째 공격. 이번엔 homeless 여성. 64세 Kimberlee Guillory. 2nd Street과 L Street 교차점 근처 텐트촌에서. 그녀는 텐트 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텐트 밖에서 칼로 여러 번 찔렀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911에 직접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태.

세 번의 공격. 5일 만에. 두 명 사망, 한 명 중태.


결국 Davis Police Chief가 기자회견을 했다.

"Serial killer라고 부르는 것이 reasonable하다고 봅니다."

그 순간, Davis는 공포에 빠졌다.




하필이면 남편은 저녁 수업 때문에 늦게까지 학교에 있었다.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오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

"수업은 8시에 끝나고... 공부 더 하다보면 11시쯤?"

"지금 연쇄살인마가 데이비스에 돌아다니는데 무슨 소리야. 공부는 집에 와서 해. 엘리하고 같이 차로 데리러 갈게. 자전거는 그냥 학교에 두고."

엘리를 카시트에 태우고, 잠옷 위에 가디건만 걸친 채 King Hall로 향했다.

Downtown을 지나다 보니 평소 9시까지 열던 가게들이 해 지자마자 문을 닫고 있었다. 치킨텐더가 맛있는 Raising Cane's도, Starbucks도, 심지어 대학생들이 즐겨찾는 Burgers and Brew까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리가 낯설었다.

캠퍼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만이 길을 비췄다. 평소엔 학생들이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곳. 이제는 아무도 없었다.


"아빠!"

엘리가 남편을 보고 소리쳤다. 남편은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빨리 가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계속 같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Davis police are looking for a suspect described as..."

"Residents are advised to..."

"If you see anything suspicious..."

남편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일부터 저녁 수업은 다 온라인으로 전환한대. 6시 이후엔 캠퍼스에 아무도 없을 거야."


DPNS 채팅창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새벽 3시에도 메시지가 올라왔다.

"못 자는 분 또 있나요?"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

"남편이 출장 갔는데...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한 엄마가 물었다.

"내일 제 duty day인데... DPNS 가도 될까요?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게 맞나 싶어서..."

또 다른 엄마도 메시지를 썼다.

"우리 아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도 모르니까. 15년간 살인사건 한 번 없던 평화로운 대학 도시에서, 갑자기 연쇄살인범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5월 3일 수요일 오후.


"잡혔대요!!!!"

채팅창이 다시 폭발했다.


Carlos Dominguez. 21세. 전 UC Davis 학생. 4월 25일, 첫 번째 살인 이틀 전에 학업 성적 부진으로 퇴학당한 학생이었다.

15명이 넘는 사람이 경찰에 제보했다고 했다. 용의자 인상착의와 일치한다고. Sycamore Park 근처에서 체포됐다. 배낭 안에서 흉기로 추정되는 칼이 발견됐다.

"UC Davis 학생이었다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네요..."

안도와 충격이 교차했다. 잡혀서 다행이지만, 가해자가 바로 우리 곁에 있던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Davis는 천천히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15년간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도시'라는 자부심이 깨졌다.

한동안 밤에 개 산책시키던 이웃들이 사라졌고, 공원은 해가 지면 텅 비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더 꽉 붙잡고 다녔다. 마치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는 여름이 되서야 조금씩 녹아내렸다.


남편을 픽업하러 King Hall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뒷좌석에서 엘리가 잠들어 있었다. 어둠 속에 잠긴 Davis의 거리를 지나며, 우리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15년 만의 살인사건. 그것만으로도 이 작은 도시는 충격에 빠졌다. Davis는 여전히 안전한 도시겠지만, 그 '완벽한 안전'이라는 환상이 깨진 느낌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금이 간 유리창처럼.


"뭔가...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야."

남편이 중얼거렸다.

"데이비스가 원더랜드 같았는데. 자전거 타고 다니고, 파머스 마켓 가고, 애들이 혼자서 학교도 다니고... 그런 환상의 도시. 근데 이제 여기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게 갑자기 실감 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Bar 시험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면, 우리는 떠날 것이다. 정해진 이별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사실을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되어버렸다.


2023년 5월, Davis의 봄은 그렇게 차갑게 지나가고 있었다.


< Davis 연쇄 살인사건 타임라인 >
- 4월 27일: David Breaux (50) 피살, Central Park
- 4월 29일: Karim Abou Najm (20) 피살, Sycamore Park
- 5월 1일: Kimberlee Guillory (64) 피습 (생존), 2nd & L Street
- 5월 3일: Carlos Dominguez (21) 체포
- 범인: 전 UC Davis 학생, 4월 25일 퇴학
* Davis는 2008년 이후 15년간 살인사건 전무
* 사건 이후 Compassion Corner, Karim Abou Najm 장학금 설립
< 2025년 재판 결과 (후일담) >
- 2025년 6월 27일: 1차 재판 무죄/미결 판결
• 1급 살인: 무죄 (배심원 만장일치)
• 2급 살인: 평결 불일치로 미결 (10대 2로 무죄 쪽)
- 2026년 1월 20일: 재심 예정
- "그림자 변신체들을 찌른 줄 알았다"는 피고인 증언
- Davis 커뮤니티는 여전히 충격과 분노 속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