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데이비스에서의 첫 캠핑 (1)

DPNS와의 첫 야외, 낯설지만 설렘 가득했던 밤

by 유지니안

10월의 소란스러움이 지나갔다. 떠들썩했던 DPNS Fall Festival과 Halloween의 열기가 가라앉자, 데이비스에는 다시 평온한 일상이 찾아왔다.


나에게 가장 큰 평화는 엘리에게서 왔다. 이제는 아침마다 내 손을 놓고 "엄마, 이따 봐!"를 외치며 씩씩하게 교실로 뛰어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 그 작은 등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에 젖어있던 어느 날, DPNS 단톡방에 알림이 울렸다.

"Veterans Day 연휴에 다 같이 캠핑 어때요? Lake Amador에서, 2박 3일로!"

학부모 회장 제이미의 제안에 단톡방은 순식간에 들뜬 이모티콘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의 고민은 이제부터였다.

텐트도, 침낭도, 캠핑이라곤 아는 것 하나 없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캠핑에 참여해도 되는 걸까?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그러게, 좀 고민이 되긴 하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DPNS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닐까?'

DPNS는 그 어느 어린이집보다 협력과 협업, 협동을 중시하는 곳이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그들만의 끈끈한 관계에 쉽사리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엘리와 나는 물과 기름처럼 DPNS 커뮤니티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게 될 것 같았다.

"여보, 아무래도 엘리를 생각하면 이번 캠핑에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내년도 있으니까, 캠핑 장비를 미리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우리의 첫 미국 캠핑은 DPNS 커뮤니티에 떠밀려, 우려와 고민 끝에 결정되었다.




우선 근처 바카빌에 위치한 캠핑월드에 가보았다. 넓은 땅에 RV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사못 웅장했다.

'우리도 RV 끌고 가고 싶다'

하지만 그곳은 RV를 사는 곳이였다.. 역시 미국인의 캠핑 사랑이란.. 그 안에 캠핑 관련 상점이 있어서 원래 목적대로 텐트와 침낭을 보려고 실내로 들어갔는데... 텐트 하나에 300불, 침낭 하나에 100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남편이 UC Davis에서 학생들을 위해 캠핑 장비를 싼 값에 빌려준다는 정보를 들고 왔다. 중고를 구하지 못하면 저거라도 빌려 가면 되겠다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혼자 가는 게 아니라 DPNS 사람들이 다 같이 가는 만큼, '캠핑 장비를 빌릴 만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KASA(UC Davis 한인 학생회) 홈페이지에 캠핑장비를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귀국을 앞둔 한 가족이 캠핑 장비 일체를 처분한다는 것. 3인용 텐트부터 침낭 세 개, 의자 두 개, 방수포, 심지어 아이스박스까지 포함된 완벽한 세트가 단돈 60달러. 우리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각종 중고물품을 구했던 그 커뮤니티가 다시 한 번 우리를 구원한 순간이었다.




출발 당일 아침,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싼값에 구해온 텐트와 침낭, 야외의자를 꼼꼼히 챙기고, 혹시라도 허리가 아플까 봐 한국에서 가져온 두툼한 토퍼도 차에 구겨넣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 캠핑에서 삼겹살이 빠지면 섭섭하니까. 쌈장과 함께 든든하게 세 근을 준비했다. 혹시 모르니 한인마트에서 사놓은 라면과 햇반, 그리고 떡볶이 밀키트도 필수.

어느새 트렁크가 짐으로 가득 찼다. 이제 다 챙겼나 싶었을 때 창고 구석 한 켠에 놓여 있던 방수포(tarp)를 발견했다. 꽤 묵직한 게 혼자 들기는 버거운 무게.

"이것도 가져갈까?"

"에이, 캘리포니아 11월에 무슨 비가 온다고. 짐만 돼. 안 그래도 트렁크가 꽉 찼다고."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수포를 차고에 내려놓았다. 24시간 후, 이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점심까지 집에서 든든히 해결한 우리는 데이비스에서 한 시간 반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캠핑장, Lake Amador로 향했다. 초행길이 불안한 남편을 위해 말동무를 해주고, 엘리는 DPNS 친구들과 함께 캠핑할 생각에 카시트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날씨도 좋은 게 캠핑하기 딱 좋은 느낌이었다.

여담이지만, 가는 길에 스쳐간 '아이오니(Ione)'라는 작은 도시가 마음 한켠에 계속 남는다. 한때 골드러시의 영광을 누렸을 법한 낡은 건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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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 Amador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온 DPNS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엘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페이지와 루시를 찾아 다른 텐트로 가 버렸다. 우리는 호수가 보이는 마지막 자리를 찾아 텐트를 설치할 준비를 했다. 나무 때문에 조금 좁은 자리였는데, 덕분에 우리가 올 때까지 비어있었던 것 같았다.


군대에서 짬밥 좀 먹었다던 남편은 놀라운 속도로 텐트를 쳤다. 군대에서 사용하던 A형 텐트보다 설치가 쉽다나 뭐라나... 그러더니 익숙한 듯 텐트 주변에 작은 물길을 파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힘을 그렇게 써? 어차피 비 안 올 거라면서."

"군대에서 하던 버릇이 남았나 봐.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네."

내 타박에도 남편은 그저 웃으며 고랑을 팔 뿐이었다. 훗날, 그것은 우리를 구원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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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이 되자 캠핑장 곳곳에서 다양한 냄새가 풍겨왔다. 하지만 우리의 삼겹살 냄새를 이길 순 없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에 엘리도 싱글벙글 춤을 췄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너무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 없는 완벽한 자연 속, 우리는 휴대용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겨우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밖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으니 그 낭만에 취할 것 같았다.


식사 후, 사람들이 하나둘 모닥불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벌써 맥주를 한 잔 한 것 같이 얼굴들이 불콰했다. 우리도 그 틈에 껴서 스몰 토킹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덕분에 우리도 오랜만에 맥주를 홀짝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스모어(S'more)를 만들며 까르르 웃었다. 엘리 머리 위로 쏟아질 듯한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은 없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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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되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고 3계절용 침낭의 한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세 가족이 함께 자기엔 토퍼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연초에 한국에서 아직 짐이 오지 않았을 때 사용하던 토퍼. 우리 세 가족이 다 같이 자기에 충분했는데, 그새 엘리가 훌쩍 자란 탓이었다. 결국 남편은 딱딱한 바닥으로 밀려나 웅크리고 잠을 청해야 했다.


새벽 2시, 잠결에 투두둑 하고 텐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딱딱한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잠을 설치던 남편이 먼저 일어났고, 뒤이어 잠귀가 밝은 내가 일어났다. 한 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는 우리 엘리는 오늘도 그저 꿈나라를 헤맬 뿐.

우리는 밖으로 나가 비가 얼마나 오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땅이 질척일 정도로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남편이 파 둔 물길 덕분에 텐트 안으로 물이 직접 들어오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남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비가 더 많이 오면, 텐트는 그대로 두고 차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고랑을 파둬서 텐트 안으로는 물이 안 들어오는 거 아니야?"

"비는 주로 땅 위로 흐르지만, 너무 비가 많이 오게 되면 땅을 타고 우리 텐트로 들어올 수도 있어."

순간 머릿속에 차고에 두고 온 방수포가 스쳐 지나갔다. 왜 우리가 방수포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방수포가 있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비는 금세 잦아들었다. 하지만 왠지 텐트 안에는 냉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고, 급하게 돗자리로 마무리한 텐트 바닥은 금세라도 습기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남편은 바닥에 누워 애써 잠을 청하고 있었다. 오늘 운전에 텐트까지 치느라 힘들었을 남편이 걱정되었다.

"여보, 우리 같이 토퍼 위에서 잘래?"

"나까지 토퍼에서 자면 너무 좁아. 차라리 한 명이라도 편하게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면 차라리 내가 바닥에서 잘게."

하지만 남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며. 가끔 조선사람마냥 고지식한 내 남편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그 고지식함이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푹신푹신한 토퍼 위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1부 끝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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