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그리고 다가가는 것,
'내가 다른 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혹시나 기회가 되어서 인연이 된다고 해도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서로가 사랑하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단순히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생긴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영어에서도 'like' 좋아해, 'love' 사랑해, 화자의 입장에서나 청자의 입장에서 확실히 다르다. 이는 사랑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 호감이라는 감정이 사랑이 맞는지, 지금 이 관계가 맞는 것인지, 서로가 확인하는 과정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어린 왕자를 쓴 생떽쥐베리는 사랑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 위대한 작가의 명언에 동의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가치관, 행동, 사고, 이와 같은 것들이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과 비슷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내가 비 오는 날 길을 걷다가 번개 맞을 확률? 혹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에 가깝다. 서로의 가정환경, 친구 관계, 종교 등 너무 다채로운 삶의 다름 속에서 형성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20대 초반, 나는 연애를 하면서 마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삶을 나눴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서로가 겪었던 삶의 이야기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고 나니,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다른 전공, 그리고 가치관은 대화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저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의 이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대화를 지속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계는 끝이 났다.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생길 때면, 서로 간의 공통분모가 무엇이 있는지 찾으려 노력한다. 더불어, 이 사람이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 그게 어렵다면,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지 꼭 확인한다. 완벽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건 정말 희박한 확률인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위해 주며, 발걸음을 맞출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컴컴한 바다 한가운데 빛을 비추는 등대를 같이 볼 수 있는 사람, 흐릿한 렌즈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사람, 그런 사이, 그게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