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한국 대사관 교민초청 윷놀이 대회 스케치
르완다에 와서 맞이하는 첫 명절이다. 아침 일찍이 페이스톡을 통해 가족들과 서로 안부를 물었어도 가슴 한편 허전했다.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를 여운처럼 남겨둔 채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오늘(2024년 2월 9일 토요일)은 대사관에서 교민 초청 행사가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택시 잡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아직 택시 예약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시간에 맞춰 탈 수 있는 택시도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두 분 자문관들과 30분 일찍 도착하자고 약속했었는데 겨우 10시가 다 되어서야 르완다 키갈리에 있는 대사관에 도착했다.
오늘 르완다 한국 대사관에 부는 바람은 훈풍이다. 모여드는 교민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몰고 온 따뜻함 때문이다. 코이카 교육을 받을 때 잠시 대사관을 방문하여 대사님과 말씀을 나눈 적이 있었지만 정식 행사로 초청된 것은 처음이라 설렘과 기대감으로 기다려졌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커피 한 잔 나눌 사람이 없는 지금, 설 명절을 맞아 교민들에게 베풀어주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마치 친정을 찾아가는 마음처럼 나는 그런 마음으로 부풀어있었다.
목마른 제, 한사리, 고릴라, 무코차, 나이스샷, 존박 말고, 르완다란, 코리아모, 모 아니면, 다윗, 고릴라등...
각각 팀별로 이름을 정해서 윷놀이 대회를 위해 사전에 신청 접수를 했다. 나는 자문관 팀과 <코릴라>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코릴라>는 나름대로 의미가 깊다. 코리아와 르완다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르완다의 대표적인 동물이 고릴라라는 것을 참작하여 이름을 지었다.
대회에는 총 24팀이 신청했으며 윷놀이 대회 참석인원은 90명 정도라고 했다. 2차 점심 식사자리 예상인원이 130여 명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왔다고 한다. 현재 르완다에 거주하고 있는 200명이 넘는 교민의 거의 상당수가 이 날 행사에 참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싶다. 그 넓은 SAKAE 음식점에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다른 어느 해보다 차고 넘치는 설날 풍경이 아니었을까.!
역시 한복의 힘은 대단했다. 대사님을 비롯하여 한복을 입은 몇몇 분과 어린아이들이 있어 명절 분위기가 한층 실감 났다. 대사관은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 같았다. 한복을 입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대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코이카 소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의 발 빠른 모습들이 우리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했다. 대회를 시작하면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향한 대사님의 말씀이었다. 대사님 앞에 12세 미만의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서 귀를 쫑긋거린다.
"오늘이 설날인데 한국 사람들의 맛과 멋을 보는 날이에요.
윷놀이에 참여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또 참여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우리 모두 다 같이 세배 연습부터 하고 세뱃돈을 드릴 거예요."
"자, 다 같이 일어나요.
앞뒤로 살짝 벌리고
내가 다시 앉아 있으면 세배하는 거예요."
그리고 직접 일어나셔서 아이들이 세배를 할 수 있도록 사이를 돌아봐주셨다. 주변에서 하나, 둘, 셋을 외치자 모인 아이들은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며 대사님께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받으신 대사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부르시며 봉투에 담아 오신 세뱃돈을 건네주셨다. 자상한 할아버지의 온정이 느껴졌다.
윷놀이 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마당 한 편에서는 제기차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 학생은 재기를 처음 차 본다고 하며 신기해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아이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보기에는 쉽게 보여도 제기 차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신발의 각도와 무릎의 각도에 따라 재기는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생뚱맞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툭 떨어지기도 한다. 서로의 호흡을 맞춰 사뿐사뿐 들어 올리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삶을 살아갈 때 가까이하는 사람들과도 이렇게 서로 호흡을 맞춰 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팀에게 희망의 기운이 보인 것은 예선에서 부전승으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첫 소식부터였다. 윷놀이 대회는 대사관 1층과 2층 그리고 2층 로비까지 윷판이 벌어졌다. 둥글게 둥글게 팀들이 모여 서로 응원하며 윷판의 말을 놓는다.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함성이 터지고 때로는 아쉬움의 소리가 깊다. 우리는 하나씩 손을 포개고 코릴라, 코릴라, 파이팅!!! 하고 외치며 팀워크를 다졌다. 세 자문관은 윷을 던지고 나는 윷말을 놓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윷을 잡고 높이 던져 올리는 이 분들의 모습을 보면 그 기세에 다 눌려버릴 것만 같다.
정말 그런 것인지 한 게임 한 게임, 지는 듯하다가는 이긴다. 드디어 16강에 이어 8강, 또 4강에 이어 준결승까지 갔다. 아무리 마음을 비운다고 해도 윷말을 놓는데 심장이 팔딱팔딱 뛴다. 팀워크의 힘이 대단해서인지 결승에서도 무사히 승리를 거뒀다. 우승과 준우승팀이 승합차를 함께 타고 점심 장소로 이동하면서 서로에게 애썼다고 공을 돌리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식당에는 이미 자리가 꽉 차있다. 겨우 뒤에 있는 소파에 원탁 테이블을 붙여놓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뷔페 음식이 차려져 있었는데 눈이 가는 데로 탄성이 나왔다. 와! 김밥도 있네 와! 잡채도 있네~~~ 이곳에 온 지 한 달여 되었는데 벌써 나도 모르게 와!! 가 나온다. 한국의 김치 같은 김치를 처음 먹어보고 한국의 오이소박이 같은 오이소박이를 처음 먹어본다. 뒷줄에 있다 보니 벌써 떨어지는 음식들이 보여서 안타까웠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드디어 윷놀이 대회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4등부터 시상이 되었고 상금도 수여되었다. 3등 존박 말고 팀, 2등 다윗팀, 1등 코릴라팀!!! 우리는 의기 등등 하게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역시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파워는 상당했다. 상금 10만 프랑을 받았는데 오늘 식사를 하고 있는 음식점의 식권이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뭉칠 기회를 또 주신 것이다.
이날 행사는 코이카 봉사단원의 악기 연주로 서서히 마치게 되었다. 함께 부르는 고향의 봄노래는 역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했다. 흥얼흥얼 하다 보니 시간은 꽤 흘러 어느새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르완다답게 화창한 날씨 같다가도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이다. 오늘 대사관 교민초청 행사를 통해 결코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대사님은 교민들에게 덕담의 말씀을 전하셨고 말씀처럼 르완다와 한국의 관계가 더욱 발전하여 이곳에서도 경제의 붐이 일어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코리아---달려라,
르완다 고릴라---달려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달리자
코리아 하면 달려라, 르완다 고릴라 하면 달려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하면 달리자 하고 구호를 외치세요. 대사님의 구호제창에 교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외쳤다. 어디서 인지 새로운 힘이 구축되고 있음을 느꼈다. 내 생의 아주 특별한 인연이 르완다 대사관을 통해 맺어졌고 오늘의 행사를 통해 대사관이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그 덕분에 먼 곳에 와 있어도 비빌 언덕이 있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이 더없이 든든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