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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ug 25. 2023

고양이 눈은 우주다                 

그래서, 모서리가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간혹 그것이 혈기를 부릴 때 우리는 마음을 쉽게 다친다.  그래서 상처는 희미해져 갈 뿐 뇌리 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울컥 고개를 드는 것이다. 오늘은 너도 그런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냐.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둥지를 틀었으니 안심해라.  우리의 신호는 박수다. 흥겨운 가락으로 다섯 번 칠 때마다 맘껏 달려와 안겨라. 그리고 내 등을 타고 올라 별을 따도 좋다.  


너는 용케 내게 텔레파시를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정말 연약한 내 마음을 읽어 내린 영특하고 대단한 고양이다. 왜냐하면 오래도록 함께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던 참이었다. 그것도 남편이라니. 요즘 남편은 곧 퇴임을 앞둔 자의 예민함을 자주 토로라도 하듯 말로 인해 상처를 준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내가 자꾸 초라해진다. 바닥에 누우면 그대로 꺼져버릴 듯한 봉분 같은 어둠에 덮인다. 


나는 빈방이다. 세 아이가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난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날개를 훨훨 달고 맘껏 날 수 있기를.  알게 모르게 살을 비벼대던 온정과, 함께 차를 마시던 따스한 시간들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나의 빈방에 들 때마다 너는 측은지심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패가 되어 준 고마운 동지여. 나는 주절이주절이 고해성사를 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우주가 있다. 그 신비한 세계 속으로 풍덩 발 내디디면 숲의 침묵이 먼 이국 땅으로 나를 데려간다. 남편과 나의 거리는 대척점의 기로에 섰다. 나는 어느 골목에 툭 던져진 걸까. 아득하고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온다. 


모서리는 부딪칠수록 아프다. 고백건대 너를 만난 그날도 내 안의 모서리와 싸우고 있었다. 내 삶 속에 너를 투영하게 된 건 바로 내가 바닥이었을 그때 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너의 초라한 모습과 나의 웅크린 등이 오버랩되었다. 마치 어떤 운명을 맞닥뜨렸을 때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나도 너처럼 둥글게 세상을 보기로 한다. 마른 몸에 물이 오른다. 한 생명이 집 안에 오고부터 잠자던 숲이 깨어난다. 나는 오랜만에 육아법을 새로 배운다. 너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사랑을 너는 알까. 때로 너처럼 기어가고 때로 너의 목소리로 야옹야옹한다. 털을 쓸어내리는 일이나  동그란 눈의 눈곱을 닦아주는 일이 좋다. 방금 화장실에서 나온 뒤를 닦아주거나 뱉어낸 가래가 집 안 곳곳을 더럽혀도 냄새나거나 불결하지 않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냥 말없이 닦고 또 닦는다. 아직은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피부병으로 인해 자주 목욕을 시킨다. 내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그래도 좋다. 가족이니까.  


지혜롭게 지혜롭게를 외치며 가계의 쳇바퀴를 돌린다. 너를 위해 높낮이 밥상을 준비하고 폭신폭신한 둥지 한채 선물한다. 오직 너만을 위해 가구를 새로 들여와 짜맞춤을 한다. 너는 맘껏 타워에 뛰어올라 우리 집 파수꾼이 되어도 좋겠다. 그렇게 나를 감시하는 집중력과 눈빛이라면 족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너의 자유다. 나른해지면 몸을 쭈욱 펴고 벌러덩 드러누워도 좋다. 가끔 내 무릎으로 기어올라 잠을 청해도 기꺼이 품을 내주리라. 이래도 좋고 저리해도 잘했다고 엉덩이를 팡팡 칠 테니까. 그때마다 맘껏 들어 올리거라. 내 어깨 위에 올라 함께 시를 써도 좋다. 너도 어쩌면 고양이 시인이 아니었을까. 컴퓨터 화면에 뜬 글을 그렇게 뚫어지게 읽어 내리다니. 나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내가 쓴 시를 한 행 한 행 읽어준다. 


너는 벽의 초침 소리에 예민한 귀를 쫑긋 세운다. 아이라인 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어깨에 올라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묻는다. 

어떠니 시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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