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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Jul 17.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31화

동행이라는 의미

카톡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그래도 연필을 잡을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참이었다. 지난주에도 과제를 올리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때 온 카톡의 글은 잠들려는 나를 깨워주는 채찍의 말과 같았다. 그것은 자칫 외로워질 수 있는 르완다에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고마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동행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그것은 등 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같은 손길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지금 나를 포함해 두 분의 선교사님과 함께 배우는데 고맙게도 르완다 대사님 사모님이 재능기부를 하셨다. 그림에 영 소질이 없는 나는 여기에 가장 늦게 합류했다. 미술 하면 중학교 때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를 맞아본 적 있다. 그때 새우를 앞에 놓고 어찌나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그렸던지 선생님이 꼼꼼하게 그린 것에 후한 점수를 주셨다. 그러니 이 뜻밖의 기록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수채화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고 미술 시간은 과목 중 가장 따분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 내가 르완다에 와서 그림을 배우다니 이것은 생각도 못 했던 기적이며 행운이다.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 내 시에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도 탄력을 받아야 하듯이 그림 또한 그랬다. 처음에는 주워다 놓은 솔방울을 그리려고 접근했는데 보기보다 너무 섬세해서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것이다. 이틀을 고민하다 온몸에 쥐가 날 것 같아 결국은 포기했다. 


요즘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늘 제자리에 있는 소파와 식탁과 티브이와 컴퓨터 등 변함없는 정을 나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따분했다. 게다가 르완다의 날씨가 건기라 너무 건조해서 목감기가 한창인데 나도 시들시들하더니 감기에 된통 걸린 것이다. 기침에 가래에 입맛도 뚝 떨어졌다. 남의 나라에 와서 몸이 아픈 것처럼 서글픈 것이 있을까마는 어쨌든 극복해야 하는 것도 바로 나의 문제였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약 기운으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커다란 유리 현관문과 창문이 정원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 햇살에 드러난 연녹색의 잎들과 눈이 마주쳤다. 햇빛이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커튼을 활짝 젖혔다. 참 이상했다. 갑자기 할 일이 생긴 것처럼 무엇을 하려고 하자 온몸이 서로 힘을 내는 것 같았다. 커피를 내렸다. 르완다 hobe coffee는 냄새가 좋고 부드러워서 글을 쓸 때도 항상 선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가벼울 것. 그래야 무거운 삶의 경계를 통과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다. 


소재가 궁해서 정원으로 나갔다. 


서둘렀다. 마치 과제를 제출해야 할 학생처럼 정원을 둘러보며 소재를 찾았다. 담장을 오르고 있는 주황색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저 꽃은 생김이 너무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그릴 자신이 없다. 지난번에는 꽃무더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 붙은 꽃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 작은 꽃 하나 그리는데 눈이 빠질 뻔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꽃의 형태가 살짝살짝 자꾸만 달라지니 말이다.


결국, 오고 가며 눈여겨보아 둔 넓은 이파리에 필이 꽂혔다. 자꾸 눈길이 간다는 것은 마음도 함께 움직였다는 거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이파리와 이파리가 서로 감싸주는 듯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 식물. 그래, 이번 소재는 바로 너다. 현관 앞에 있는 원탁의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무더기로 심어져 있는 식물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파리는 크고 줄기는 가늘고 빳빳한 식물의 이름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칼라데아 루테아 (Calathea lutea)였다.  선명한 잎맥이 아침햇살에 드러난다. 현관문 바로 앞에서 누구보다 먼저 나를 바라보고 누구보다 먼저 반겼을 저 이파리들. 밤새, 문 앞을 지켜주었을 저 잎들. 오늘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온다. 


모자를 가져다 썼다. 현관문 열면 코앞이지만 적도 부근인 것 잊지 말기. 그래서 모자는 필수다. 스케치북에 중심선을 긋고 가운데에 이파리 하나를 먼저 그려 넣었다. 그 이파리에게 살짝 귀띔했다.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이파리를 또 그려 넣었다. 그렇게 범위를 넓혀 가다 보면 선택받지 못하는 잎들도 있는데 나는 사실, 그것들을 다 그려 넣을 자신도 없고 어떤 것을 선택해서 그려 넣어야 되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릴뿐이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집중한다.


싱싱한 이파리보다 시들거나 상한 이파리들을 그릴 때 더 신경을 쓴다. 상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선과 선이 만나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어두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들에게도 주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이파리가 크다 보니 어느새 스케치북이 꽉 차는 느낌이다. 그리다가는 지우고 그리다가는 지우기를 반복한다. 바닥에 지우개가 벌레처럼 쌓인다. 물론 스케치북을 반으로 잘라서 쓰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까지 그린 여섯 작품( 손 3, 발 1, 꽃 2) 중 가장 큰 그림이 될 것 같다. 


소재를 발견하고 한곳에 집중하면 시간도 압착되어 진액이 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까이 대문 여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도 이들은 다들 먼 곳의 소리가 된다.  얼마나 집중을 하고 그렸던지 청소하던 Aris가 옆에 와서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도 몰랐다. 그녀는 내가 글을 쓰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무엇에 집중하고 있으면 매우 조용히 청소를 하고 문을 닫고 살짝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정원에 있는 식물을 그리고 있으니까 자신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쌩큐~~ 한다. 마치 르완다를 사랑해 주니 고마워요~~!!!라는 것처럼.


내가 여섯 번째로 그린 작품


데생을 마치고 왼쪽 위에 사인을 하면서 제목을 붙였다. 

화폭에서 식물들이 즐거운 인사를 나누는 것 같다. 정원의 아침이 떠들썩하게 무체(굿 모 닝) ~~!

저들도 서로서로 손 내밀고 등 토닥이며 함께 가고 있겠지.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면서...


안녕하세요.
다른 분들과 같이 그림 숙제 올려주세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입니다~~^^
생각보다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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