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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ug 13.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35화

어쩌다 팝송을~^^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 추억을 떠 올리게 하는 영상을 보았다. 다름 아닌, 올드 팝송이다. 1982년, 포코라고 쓰여 있는데 그 노래가 발표되었을 땐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20대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사실 그때 나는 가지의 마음을 경험하고 었다. 하나는 집안 형편상 대학에 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었고, 하나는 은행 중에서도 최고의 은행이라고 칭하는 한국은행에 입행하게 되는 묘한 설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다른 섭리가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좋은 직장에서 정말 유능한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고 직장 선교회에서 남편도 만났다. 그리고 야간대학에서 공부하며 꿈을 펼칠 있었다. 조금 더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자리에 서서 돌아보면 내가 느꼈던 열등감이나 소외감, 부족한 모든 것들도 내겐 자양분이었다. 시의 감성을 그때 배웠던 것 같다. 이렇게 이곳 아프리카 르완다에 와서 그때의 팝송을 다시 듣고 보니 노래의 깊이와 넓이가 더 이해된다.


사실, 나는 영어권 나라에 와서 생존 영어로 겨우 소통하는 사람이다. 정말 내가 영어를 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남편과 함께 외출하다 보면 남편은 그들과 대화를 충분히 이어가는데 나는 그저 몇 마디 겨우 하고 있으니까 자신이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목마름을 느낀다. 그들과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지금 내 글의 깊이도 더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나는 지금 매일 갈증을 해소하듯이 조금씩이라도 영어의 바다에서 몸부림치고 있고, 그런던 한 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진짜 바다를 만난 것이다.


곡 앞부분의 몇 소절을 적어 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추억의 감성 속으로 푹 젖어 보기를 기대하며... 


상심의 바다 동영상 캡처


Sea of Heartbreak (상심의 바다)


The right in the harbor  (항구의 불빛은) 

Don't shine for me  (나를 향해 비추지 않아요)

I'm like a lost ship  (나는 길 잃은 배랍니다)

Lost on the sea  (바다에서 길을 잃은)

The sea of Heartbreak  (이 상심의 바다는)

Lost love and loneliness  (사랑과 외로움을 잃어버렸어요)

Memories of your caress (당신의 기억은 너무 소중해)

so divine I wish you were mine again  (당신이 다시 내 곁으로 오길 원해요)

my dear I'm on the sea of tears  (내 사랑이여, 나는 눈물의 바다에 있답니다)




이 곡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영상 속에 있는 바다와 배가 노래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바다의 저 끝 어디쯤에서 잃어버린 사랑이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절한 가사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 나이가 되고 보니 상심이라는 말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깊이가 더해져 얼마나 많은 상심의 굴레를 넘어왔던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또는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겪었을 상심의 바다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노래가 마음에 깊이 와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은 자의 처절함이 더욱 느껴지는 소절이 있다. Now How did I lose you where did I fail.

(어떻게 나는 당신을 잃어버렸을까요? 어디서 나는 실패를 했던가요)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이 생각났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함께 공감하고 댓글을 달아주고 위로해 주었었다. 그것은 이 노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나는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직접 만나 본 것도 아니고 말을 해 본 것도 아니지만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연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더 끈끈한 정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따뜻한 댓글로 나도 힘을 얻기도 하고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르완다라는 먼 땅에 와서도 내가 외롭지 않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 바로 브런치가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들에게 늘 고마운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거리니 마음도 더 촉촉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르완다 사람들도 흥이 참 많은 민족인 것 같다. 길을 가다가 거리에서 댄스 동영상을 찍는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 영상을 찍어주고 즐거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다. 조깅을 하면서도 헤드셋을 끼고 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르완다의 음악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70, 80 같은 음악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들을수록 정이 가고 낯설지 않다.  나라가 느리게 가는 것처럼 음악 또한 빠른 템포가 아니다. 나 또한 느리게 가는 사람이라 더 빨리 적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리게 간다는 것이 결코 유행에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돌고 도는 유행처럼 조금 느리게 갈 뿐... 나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좋다.


아마 이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을 잃고 상심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누구였을 것이다. 뒤늦게 자기를 성찰하며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부르지만 그것은 오직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상심의 바다로부터 아주 멀리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하는 절규에서 함께 아픈 전율을 느꼈다. 가사 하나하나가 매우 시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사랑과 외로움을 잃어버린 상심의 바다는 예전의 나, 또는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지나 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듯이. 또 지나온 길에 찍힌 나의 발자국은 추억의 깊이가 어떠했을까.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들리지만 가장 긴 여운이 남는다. 출렁이는 바다도 잠잠해지지만 그래서 더 상심의 바다가 깊어 보인다. 그 깊은 바다에 잠겨있는 여전히 잊지 못하는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다.  

I'am drowing in sea of heartache
나는 상심의 바닷속으로 빠져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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