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마주친 우리 집 예삐처럼 그런 가엾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가서 닿는 것을 어쩌랴.
르완다에 와서 나는 결국 캣맘을 자청했다.
고국을 떠나오면서 눈에 밟히던 우리 예삐, 그래도 둘째 딸과 함께 잘 지내니 정말 다행이다. 그 아이로 인해 나의 삶이 변화되었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르완다에 와서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우리 집 정원을 찾아온 길고양이 한 마리. 커다란 쓰레기통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노랗고 검고 흰 털을 가진 삼색이었다. 집이 1층이라 얼른 들어가 먹이를 챙겨 나왔는데 그새 사라졌다.
집 지키는 가드 목소리에 놀랐던 것일까.배가 고파서 온 걸까? 이런 대낮에. 아쉬웠던 마음이 오래갔다. 그 후 저녁마다 고양이 밥을 놓아주었다. 아침이면 빈 그릇이 되어 있었다.
르완다에 와서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어찌나 빠르게 도망을 가는지 매번 먹이를 가지고 나갔어도 다시 들고 들어오곤 했다. 달아나는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노래하듯 스스로 약속을 했다.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너라~!!!
그런 나를 보고 처음에는 남편이 걱정을 했다. 행여 길고양이들이 야생의 습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나는 남편의 일이 끝나는 2년 후면 고국으로 돌아갈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길들여놓으면 나중에 고양이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검색을 해 보니 이 부분을 염려해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의 70프로만 주라는 의견이 있어 밥 줄 때마다 염두에 둔다.
이곳에서 개를 기르는 집은 여럿 봤지만 길고양이를 챙기는 급식소는 아직 한 군데도 보질 못했다.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환경인데 누가 길고양이까지 챙기겠는가. 사료를 살 수 없어서 결국 우리가 먹는 밥과 조금 차별을 두었다. 예를 들면 고깃국을 끓여도 간을 하지 않은 채로 먼저 덜어놓았다. 때론 오늘은 뭘 주지^^하는 걱정도 한다. 녀석은 어찌나 입맛이 까다로운지 맛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분명했다. 고깃국물이라도 대령을 하면 그릇을 싹싹 비우는 것이다. 그래도 바닥이 깨끗이 드러난 그릇을 보면, 맛나게 먹고 갔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 든다.
사실 르완다 음식은 입맛에 맞는 것이 별로 없다. 문만 열고 나가면 먹거리가 수북한 한국과는 너무 대조적인 나라다. 한국 슈퍼가 없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현지 음식인 멜랑제는 펄펄 나는 알랑 미 밥과 카사바나 바나나 요리, 콩,에 소스를 끼얹어 먹는 것인데 여기에 고기 한 점이나 삶은 계란 한 개가 나온다. 몇 번 먹다 보면 처음의 담백한 맛은 어디 가고 속이 니글니글해진다. 그래서 가끔 생각나는 곳이 한인 식당이다. 교회 지인분들하고 찾아 간 대장금에서 뚝배기 불고기를 주문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맛 하고 똑같았다. 어찌나 정신없이 퍼먹었는지 고기 한 점 남김없이 먹었다. 그제야 남은 국물을 보고 퍼뜩 생각했다. 아줌마의 뒷심을 발휘한다.
"이거 싸주세요. 집에 야옹이가 있어요~!" 남은 밥까지 부어서 싸준다.
전 같으면 닭을 살 때 아예 껍질을 벗겨서 오는데 지금은 그대로 달라고 한다. 사실 껍질은 가장 살이 부드럽고 맛있는 부분이 아닌가. 끓는 물에 닭을 넣고 폭 폭 삶아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서 기름기를 싹 걷어내면 된다. 살을 발라낸 뼈도 다시 끓이면 뽀얀 국물이 나온다. 그렇게 우리도 단백질을 채우고 삼색이도 단백질을 채운다.
밥을 챙겨 주다 보니 고양이의 식성을 알게 되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과 나처럼 외식도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식빵에 우유를 부어준다. 내가 때로 빵이 생각나서 바소 카페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CLUB은 빵에 햄, 계란, 치즈, 토마토, 상추를 넣은 것인데 빵 맛이 기가 막히다. 씹을수록 쫀득쫀득하다. 먹다가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으면 더 맛이 있다. 그 맛을 느끼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그날 입맛을 쩍 쩍 다시던 삼색이도 나처럼 그런 행복을 느꼈을까?
저녁 7시 30분 정도가 되면 우리는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삼색이 녀석, 우리가 산책을 나가는 그 시간에 즈음하여 밥 먹으러 온다. 현관 앞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이 언제부터 신호가 되었다. 산책 나갔다 오면 밥그릇이 비어있다. 길고양이의 특성상 사람에게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좀처럼 밥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한 날 궁금했던 장면을 보았는데 가슴이 뛰었다. 나는 그 시각에 창문 곁에 딱 붙어 있었다. 삼색이가 왔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창문을 와락 열었는데 그만 그 아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왔구나 많이 먹어~!!!" "네 엄마야~" 어둠 속에서 눈빛이 반짝였다. 녀석도 제법 놀랐을 텐데 밥그릇에서 조금 떨어졌을 뿐 냅다 도망은 가지 않았다. 너도 외식하니까 좋아~! 혀로 입 주위를 연신 핥으며 유유의 맛을 다시는 삼색이. 마치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한동안 쳐다보더니 역시 벽 뒤로 몸을 숨기긴 한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이제 조금 가까워졌다.
이러다가 우리 집이 맛집이 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미 소문이 났는지도 모르지!!!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을 기다리는 길고양이의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