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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ug 28.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37화

한 잎, 사랑에게


어쩌다  너는 가파른 벽, 한 톨의 물도 남아있지 않은 저곳에 뿌리를 내린 걸까.  

어쩌다 너는 발 한 번 잘못 디딘 죄로, 적도 아래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곳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저렇게 서 있는 것일까. 이왕이면 기름진 땅 어귀 한편이면 좋았을 것을.

너의 바람도 아니고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겠지. 저 단단한 틈 어디에서 너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알 수도 없는 내게는 들리지도 않는 어떤 비밀이 있길래. 너는 바싹 타는 입술로 저 단단한 벽과 한 몸이 된 것일까~!!!






르완다에 온 지 8개월째. 이제 처음보다 훨씬 익숙해졌다.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던 삶이 하나둘씩 어둠을 거두어 갈 때, 비로소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집안의 고요. 나는 그것이 너무 싫어서 이틀에 한 번씩은  카페를 갔다. 그러던 내 삶이 어느새 집 안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편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의 고요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교회 다녀오는 길에 키미롱고 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치도 할 수 있고, 쌀도 탄자니아 쌀이나 우간다 쌀이 더 좋은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3개월 정도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이 땅에 대한 낯섬도 있었지만 선교사적 사명을 가지고 앞서가는 남편과의 삶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 나는 뚝 떨어져 내린 듯한데 남편은 그 열정이 대단해서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싶어 했다. 나는 먼저 온 봉사자들의 충고를 염두에 두고 늘 조심하라고 하며 제지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매우 피폐해졌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큰 딸의 말처럼 정말 돌아가고 싶은 마음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충고해 주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부딪히며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의 속성을 아직도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또 한 편 이런 생각도 했다. 혹시나 내가 남편에게 걸림돌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마음을 내려놓았다.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참 신기한 것은 마음 하나 바꾼 것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 정말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나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생수를 부어주시는 그분을 경험했다.


르완다의 대 건기의 계절이 바로 그랬다. 한때의 내 마음처럼 거리에 내몰린 목마름을 겪고 있었다. 식물들은 온통 황사 모래를 뒤집어쓰고 바람이라도 불면 온 천지가 붉은 기운이 돌았다. 남편은 잎들이 숨도 못 쉴 것 같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테이블을 닦으면 붉은 모래가 묻어 나왔다.




저 작은 잎에 물을 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던 흑인 여자가 큰 소리로 웃었다. 물병을 들고 가는 우리의 뒤를 따라 걷던 여자였다. 외국인이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지켜보는 모토 기사도 있었다. 몇 주째 물을 주고 나니 올라오는 줄기가 빳빳해졌다. 그리고 또 싹이 나기 시작했다. 사랑을 주니 식물도 이렇게 등을 펴고 어깨를 세운다. 사랑은 마법의 바람 같은 것일까. 남편과 나도 이제는 그 따뜻한 바람의 대열에 합류하여 르완다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종착역은 하나였다. 그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을 주면 키가 쑤욱 자라고 얼굴에도 윤기가 돈다. 반짝반짝 햇볕에 드러나는 초록 얼굴을 어루만진다.


잘 견디고 있구나. 조금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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