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을 위하여
희망만이 인생을 유일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다른 고3 아이들은 예비고사(수능)를 보러 갈 때, 나는 학교로 갔다. 사람들이 대학에 못가는 나를 다 아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졸업한 후 직장에 다녔다. 절망, 나의 삶은 온통 회색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대학에 들어갔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캠퍼스에 옹기종기 모여 마냥 즐거워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자신을 행정학과 학생이라고 소개하고서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공부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 함께 읽은 책이 E.H.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역사의 주인으로 재탄생하는 기적을 맛보았다.
70년대 중후반, 고도 성장기였다. 보릿고개를 막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요동치는 역사를 느꼈다. 20대들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 후 80년대의 경제는 호황기였다. 대거 육체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들이 탄생하면서 권위적인 정부에 항거하며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다. 그 후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면 나는 참으로 희망찬 20대를 보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격동의 시기였다.
민주화를 주도한 586세대들이 정치를 위시한 많은 분야에서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시대의 과제를 얼마만큼 충실히 풀어나가고 있을까?
‘이대남(20대 남자)들’은 어떤 세상을 살아왔을까? 그들은 21세기를 전후해서 태어났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그들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한 경쟁을 경험했을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자기계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봉건사회처럼 부모의 신분과 재력이 세습되는 걸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이 보였을까? 노력하면 잘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주식, 비트코인, 로또 같은 한 방의 대박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민주화의 주역인 586세대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신자유주의의 대안 세력으로 보였을까?
그들의 정치의식성향이 겉으로는 보수적, 수구적으로 보이지만 내게는 비명소리로 들린다.
얼마 전 집 두 채를 가진 청와대 수석들이 집 한 채를 팔지 않기 위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지 않았던가?
민주개혁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집 한 채에 연연해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에게 젊은이답게 진취적인 눈을 가지라고 하는데, 그들에게 그런 기회가 있었을까?
치열한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는 취직 준비에 올인했는데, 어떻게 역사의식을 갖고 이 시대를 고민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경험을 통해 의식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586세대들은 엄혹한 군사독재치하에서 자랐지만 희망이 있었다.
그때는 취직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캠퍼스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한 시대를 뜨겁게 안을 수 있었다.
그들의 피와 땀의 결실로 오랜 군사독재정부가 끝나고 문민정부,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 20대는 무엇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그들의 절망을 잘 말해주지 않는가?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이 자란다.
〔......〕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희망의 바깥은 없다》부분
우리가 20대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한, 그들에게서 희망의 싹은 돋아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하나가 될 때 희망이 연초록 새싹을 뾰족 뽀족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