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미 부처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 (달마)
우리들은 맹 아니면 꽁이라는 소리만 내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는데
- 신미균, <맹꽁이> 부분
아기들은 옹알이로 모든 소통을 한다. 엄마와 아기 모두 충만한 얼굴이다. 그러다 많은 언어를 배워가면서,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허전하다.
언어와 세계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말과 남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속에서 항상 말들이 와글거린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는 항상 고뇌에 차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 달마가 소림사에서 9년째 좌선하고 있을 때, 신광(혜가)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달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간절하면, 네 성의를 보여라.” 신광은 왼팔을 잘라보여 주며 깨달음을 구했다.
달마가 그의 진심을 인정하여 그에게 법을 전하였다고 한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깨달음은 지식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결단이다.’
그 후 신광은 달마와 대화를 나누며 견성(見性)한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보게 된다.
혜가: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음을 편안케 해주십시오.”
달마: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케 해주겠다.”
혜가: “아무리 찾아도 제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달마: “그렇다면 이미 네 마음이 편안해졌다.”
혜가는 대오(大悟)했다. ‘나는 이미 부처다.’ 이제 혜가의 말은 단순해졌을 것이다. 아기의 옹알이, ‘맹꽁’으로만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