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와 이타주의

by 고석근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면서 타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그들은 바로 타인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어제 강의 시간에는 아주 오래된 옛 제자들이 왔다. 함께 공부하며 옛 추억담들을 얘기했다.


그녀들은 내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신나게 강의를 한 것뿐인데, 그녀들은 내게 많은 도움을 받았나 보다.


나는 마냥 즐거웠다. 사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쿨’한 관계로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에 일생의 목표를 세웠다. ‘가문을 일으키자!’


나는 ‘장남’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엄격히 단련시켰다.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대행자로 대했다.


결혼해서까지도 나의 최우선 순위는 부모님과 동생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장남’을 버렸다.


나는 ‘나’가 되기 위해 허허벌판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 동안의 나의 삶을 통째로 부정했다.


나는 동생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니체의 말대로 그건 동생들을 소유하기 위한 거짓 사랑이었다.


내게 스스로 씌운 굴레 장남, 그 허깨비를 위하여 나는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사랑은 자신으로 사는 자만이 행할 수 있다. 자신으로 살아가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도움을 준다.


사랑은 자신의 힘이 넘쳐서 저절로 주게 되는 것이다.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거름이 되어 다른 누군가의 먹거리가 되듯이.


크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와 남의 이익을 위한 행위는 같다. 우주만물의 원리가 자리이타(自利利他)다.


왜냐하면 우주만물 자체가 하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이라는 게 있어 자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우주만물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나’는 없다. 나의 몸은 끊임없이 우주만물과 생명을 주고받는다.


아침에 먹은 멸치가 나의 뼈가 되어가며 지금의 나의 뼈는 몸 밖으로 배설된다. 허공을 흘러 다니던 공기가 내 코를 통해 들어오고 몸 안의 공기는 밖으로 나간다.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까지가 남인가? 생각을 내려놓고 무심히 자신과 천지자연을 바라보면 둘은 하나의 몸이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우주만물과 하나가 된다. 내가 하는 행위가 우주만물의 행위가 된다.


빗방울이 하늘에 구름으로 떠 있다가 몸이 무거워지면 땅으로 떨어진다. 그 비를 마시며 만물이 자란다.


산천초목은 이 단비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무심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주만물이 서로 고마워하면 어떻게 될까? 비를 내려주어서 고맙다고 하늘을 칭송하는 농부들과 비가 내려 야외 행사를 취소해야 도시 주민들.


하늘은 누구 편이 되어야 하는 건가? 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인간에게’ 인(仁)하지 않다.


그저 무심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사람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다.


이기주의는 질병이다. 우주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몸뚱이만 자신으로 보는 중병에 걸린 환자다.


이기주의가 이타주의의 탈을 쓰면 무섭다. 내가 오랫동안 동생들을 위해 살아 온 것처럼.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길을 가며 나도 모르게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 <아메리카 토착민의 노래> 부분



인간은 어찌하여 천지자연에서 튕겨져 나오게 되었을까?


우리는 일생을 다 바쳐야 한다. 다시 천지자연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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