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

by 고석근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타인에게서 고귀한 점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더 예리하게 그 사람의 표면에 나타난 비천한 부분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를 폭로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선악의 피안』에서



오랫동안 남의 단점이 기막히게 보였다. 예리한 직관, 통찰력이었다. 속으로 그들을 비웃으며 자족했다.


남을 깎아내리고서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가엾은 생. 그런데 그 당시는 내가 가여운 존재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아마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나를 그냥 소심하고 매사에 성실한 사람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내 가슴에 칼을 품고 있는 줄 모르고. 나는 겉으로는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어울리면서 항상 딴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학 공부를 하면서, 나의 진면목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텅텅 빈 나의 실상.


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속이 허하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며,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차츰 나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속을 보게 되니 남의 속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 구조는 크게 보면 같다.

본인이 알 수 있는 의식 세계는 다 다르다. 하지만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면 ‘보편적인 인간’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동화, 신화에서 보면 영웅들은 반드시 깊은 물속이나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서 천하의 귀한 보물을 얻는다. 생사의 문제를 풀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종족을 구한다.


영웅은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마음의 중심이 이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는다.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와 하늘로 날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온 인류의 마음과 하나다.


자신의 마음과 인류의 마음이 하나가 된 사람, 그의 가슴은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다.


무학 대사가 이성계에게 가르침을 준 말,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이성계는 ‘돼지’를 벗어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으리라. 그는 다른 사람의 고귀한 점이 보여 그의 주변에 천하의 영웅들이 모여 들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내게 화가 나셔서 하셨던 말씀, “세상 네 혼자 살아라!” 지금도 두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예민하게 태어난 내 성격이 가난 속에서 심하게 비틀어졌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인문학을 공부를 하며 아버지가 주신 화두를 풀었다. 나는 나의 무의식의 세계로 여행하며 ‘큰 나(보편적인 나)’를 보았다.


큰 나의 눈에는 세상과 내가 하나였다. 자비(慈悲), 세상을 사랑하며 가엾게 보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쉽게 내 마음이 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큰 나의 마음을 본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긴 여정은 한평생 계속 될 것이다. 수많은 보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부분


시인은 고백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인은 고해성사를 했으니, 자신 안에서 사랑의 나무는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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