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충동

by 고석근

죽음의 충동


모든‌충동은 죽음의‌충동이다. - 자크 라캉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편 소설 ‘친숙한 여인’을 읽었다. 주인공인 그는 아내가 죽자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살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격렬해지고, 되돌릴 수 없는 상실에 대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아내를 닮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를 뒤따라간다. 그녀는 뭐하는 사람일까? 그녀는 그보다 열 발짝 쯤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계속 그녀와 똑같은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가 가로등 옆을 지날 때면 그는 그녀 형체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죽은 아내의 걸음걸이가 그의 앞에서 둥둥 떠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녀가 정말로 자기 아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자 하는 미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결국 그녀의 집에까지 따라가게 되고, 다음 날 그녀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도 아내와 같은 ‘테레제’였다. 그는 그녀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뜨겁게 포개지는 걸 느끼게 된다.

지난 가을 아내에게서 받았던 바로 그 입맞춤이었다. 그때와 똑같은 따스함과 똑같은 쾌감이 있었다.


아,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모자 안에 꽂혀 있던 바늘을 뽑아 그녀의 가슴에 깊숙이 찔렀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는 바늘을 빼내고는 옆방 창문으로 뛰어가 아래쪽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살인자다! 살인자다!”


그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는 창문에서 떨어져 안락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왜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의 살인자가 되었을까? 스스로도 죽음을 향해 달려갔을까?


인간은 무생물에서 나온 생명체다. 생명체이기에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원초적 고향, 무생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다.


만일 생명체인 인간이 무작정 살고 싶어만 한다면, 인간세계는 죽음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서 그는 생의 의지가 약해졌다. 그러다 아내를 닮은 여자를 만나 잠시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밀회는 아내에 대한 그의 질투심을 되살려냈다. 파렴치한 여자! 그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원초적 본능이 있다. 식(食)과 성(性). 식은 개체의 본능이고, 성은 개체를 넘어선 영생의 본능이다.


그래서 성은 죽음의 본능과 만난다. 둘 다 ‘개체인 나’를 넘어서는 본능이다. 이 본능은 근원적인 본능, 충동이다.


‘친숙한 여인’을 만나 죽음의 충동에 사로잡힌 그는 홀린 듯이 죽음을 향해 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 충동을 잠시 유보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삶의 본능을 활짝 꽃 피운다. 소풍 온 아이처럼 마냥 즐겁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 날 한순간에 그곳으로 갈 수 있다.


죽을 때 붕붕대는 파리 소리가 들렸다

방안의 고요는

폭풍과 폭풍 사이에 깃든

허공의 고요 같았다.


〔......〕


나는 유품을 물려주고 내 몫에서

나눠줄 수 있는 것이면 다

처분했다. 그때 거기에

파리 한 마리가 끼어들었다.


푸릇하고 희미한 비틀대는 소리를 내며

빛과 나 사이에--

그러자 창들이 흐릿해졌고, 그런 다음엔

보려 해도 볼 수 없었다.


- 에밀리 디킨슨, <죽을 때 붕붕대는 파리 소리가 들렸다> 부분



파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죽음의 전령사다. 시인은 파리의 붕붕대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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