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반지
욕망이란 타인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욕망할수록 자아는 자기에게서 멀어진다. - 자크 라캉
드라마 ‘크라임 퍼즐’의 마지막 회에서 사이비 교단, 인교의 교주는 그를 줄기차게 쫓아다니던 범죄 심리학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두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다. 허탈해하는 범죄 심리학자.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그렇지 않았던가!
태산 같아 보였던 ‘영웅’들은 막판에 왜 그리도 쉽게 일그러지며 찌그러져버리는가! 그들은 원래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영웅’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신이라느니 하면서 허세를 부리지만 결국 그가 바라는 건, 자신의 속물적 이익이었다.
막판에 몰리게 되자 자신의 이익, 생존을 위해 쉽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오로지 그가 한평생 섬겨온 건, 자신의 속물적 이익이었다.
나도 교직에 있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 ㅇ 교장 선생님은 독재자였다. 그의 아성은 견고한 듯이 보였다.
수업 시간에도 마구 교실에 들어와 교사를 혼내주었다. 다들 뒤에서는 그를 욕하지만 감히 그의 앞에 나서진 못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우리는 교장 선생님에 대한 개선 사항을 적은 연판장을 돌렸다.
나는 몇몇 교사들과 함께 거의 모든 교사들이 서명을 한 연판장을 들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그날 밤 교장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 커피숍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은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항상 빳빳하게 들고 다니던 고개는 앞으로 축 늘어져 있고 얼굴 표정은 비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내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 나는 그때 수많은 독재자들의 말로를 생각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자아’가 있다. ‘나’라는 의식, 한번 생겨난 나는 한평생 욕망을 좇아간다.
암세포처럼 증식하는 이 욕망은 다른 사람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결핍된 것들이 욕망이 된다.
돈, 권력, 명예가 대표적인 자아의 욕망들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말한다.
“욕망할수록 자아는 자기에게서 멀어진다.” 자기는 인간 내면에 있는 진정한 나, ‘참나’다.
자기에는 신성(神性)이 있다. 천지자연과 하나인 나. 자아는 욕망에 빠지면서 자기로부터 멀어진다.
자기를 잃어버린 비대한 자아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겉으로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은 허상이기에 강둑이 무너지듯 쉽게 허물어진다. 진정한 강자는 항상 ‘자기’를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우리 안에 느껴지는 고결한 마음, 이 마음을 항상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다.
그는 자아의 욕망에 빠진 사람들이 밖에서 찾는 절대반지를 자신의 마음에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이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사람. 그는 천지자연이 곧 자신이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독재자들이 절대반지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자아가 만든 허상일 뿐이다. 그들이 절대반지를 스스로 깨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대반지를 깨버리고 나면 천지자연이라는 진짜 절대반지가 그의 손가락에 이미 끼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 김지하, <중심의 괴로움> 부분
시인은 어느 봄날, 흔들리는 꽃대를 본다.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우리는 항상 ‘중심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산다는 건,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늘 일촉즉발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