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일본의 국민시인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그림책 ‘구덩이’을 읽었다.
‘일요일 아침, 할 일이 없는 히로는 구덩이를 파기로 한다.’ 할 일이 없는 아이는 무언가 한다.
어른은 할 일이 없으면 무엇을 할까? 무료해하거나, 미래에 할 일을 설계하거나...... 여하튼 창조적인 행위는 없다.
어른은 일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일과 관계된 것을 한다. 어른은 돈벌이와 무관한 것은 하지 못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아이들의 행위는 그냥 한다. 천지자연의 운행과 하나가 된다. 모든 게 놀이다. 흥에 겨워 무언가 한다.
천지자연은 항상 춤을 추니까. 우주는 에너지의 장(場)이니까. 아이도 우주의 율동에 자신을 맡긴다.
어른의 불행은 놀이를 잃어버린 원죄의 벌이다. 어른의 몸은 리듬을 잃어 항상 무겁다.
‘여동생 유키가 왔다. “나도 파고 싶은데.” 히로가 대답했다. “안 돼.” 그러고 나서 계속 구덩이를 팠다.’
엄마, 여동생, 친구, 아빠가 다녀가는 도중에도 히로는 열심히 구덩이를 판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도 해야 한다.
인간 외의 다른 동물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없다. 그들은 ‘나’라는 의식이 없어 자신의 세계를 만들지 못한다.
인간은 다 다르다. 각자 하나의 세계다. 어떤 사람은 동물들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신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어릴 때는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다 커가면서 어른의 압력에 못 이겨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고 어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구덩이를 다 판 후 히로는 삽을 옆에 놓고 구덩이 바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인간은 노동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히로의 행위는 전 인류의 행위다. 신화적 행위다.
히로의 노동이 만들어낸 세계는 신비롭고 거룩하다.
‘히로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덩이 안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여느 때보다 훨씬 파랗고 훨씬 높아 보였다. 그 하늘을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가로질러 날아갔다.’
히로의 노동은 어른의 노동과 다르다. 어른의 노동은 돈벌이다. 아이의 노동은 놀이다. 결국엔 큰 보상이 오는 유희.
히로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충만함을 만끽한다. 어른은 어떤가? 돈을 세며 희희낙락거리지 않는가?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지고 허탈한 가슴을 메꾸기 위해 또 고된 돈벌이 노동에 나선다.
‘‘이건 내 구덩이야.’ 히로는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힘겹게 쌓은 모래성을 단숨에 허물어 버린다. 왜? 또 다른 성을 쌓아야 하니까.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놀이거리가 있으니까.
어른들의 세계가 아비규환의 생지옥인 건, 노동의 결과물을 소유하려는 탐욕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허물고 계속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무한한 창조적 유희, 바로 천지자연의 모습이 아닌가?
지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천지자연은 놀이에 취해있다. 온 세상이 꽃물결을 이루더니 한순간에 포르르 꽃들이 진다.
세상은 온통 초록이다. 초록은 어느새 단풍이 들 것이다. ‘구덩이’에서 바라본 세상이다.
모든 자연은 작업 중이야. 민달팽이들은 자신의 은신처를
떠나고-
벌들은 웅성거리고- 새들은 날고,
그리고 허공에서 잠자는 겨울은,
미소 짖는 자신의 얼굴에 봄의 꿈을 띠지!
나는 그 동안, 유일하게 한가한 존재인 나는,
꿀을 만들지도, 짝을 찾지도, 집은 짖지도, 노래하지도 않아.
그래도 나는 그 둑들을 잘 알아, 어디에 영생의 꽃 애머랜스가
바람에 흔들리는지를,
꿀물의 물줄기가 흐르는 발원의 샘을 찾아냈어.
피거라, 그대, 애머랜스여! 그대가 원하는 자에게 피거라,
- S.T. 코울리지, <희망 없는 작업> 부분
인간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희망 없는 작업’을 해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