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보

by 고석근

아름다운 바보


바보와 미친 사람은 진실을 말한다. - 영국 속담



권정생 아동문학가의 그림책 ‘용구 삼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바보’를 보여준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용구 삼촌은 이렇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건넛집 다섯 살배기 영미보다도 용구 삼촌은 더 어린애 같은 바보였습니다...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 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은, 언제나 야단만 맞으며 자라서인지 벙어리에 가깝게 말이 없었습니다.’


‘삼촌이 언제부터인지 누렁이를 데리고 못골 산으로 풀을 뜯기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삼촌이 누렁이의 고삐를 잡고 있으면 누렁이가 앞장서서 가고 삼촌은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특별한 먹을 것이 있으면 우리들 조카들에게 나눠 주고 언제나 삼촌은 나머지만 먹었습니다... 새 옷 한 벌 입지 못한 삼촌은 항상 헐렁하고 기워진 바지만 입었고 머리가 덥수룩했습니다. 까만 고무신만 신고 삼촌은 그래도 언제나 웃었습니다.’


‘어느 날, 해질녘이 되었는데도 삼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경희 누나와 나는 삼촌을 찾아 나섭니다. 못골 골짜기는 이내 어두워지고, 낙엽송 솔숲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참나무 숲 쪽 산비탈에서 삼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웅크리고 고이 잠든 삼촌의 가슴 안에는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웅크리고 고이 잠든 용구 삼촌 가슴 안에 함께 잠든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 이 장면을 보며 눈물이 울컥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성자의 잠자는 모습이 아닌가? 사람들이 흔들어 깨우자 토끼는 잽싸게 도망치고, 용구 삼촌은 여전히 태평하게 자고 있다.


야생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알아볼 것이다.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가까이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의 왕들은 광대를 가까이 두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그들 곁에 ‘바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왕은 ‘절대지존’이라 자아가 끝없이 팽창한다. 자신이 신인 줄 착각할 수도 있다. 누가 곁에서 깨우쳐 줘야 한다.


‘정신 차려! 너는 한 인간이야!’ 고고한 인품과 학식을 지닌 대신들이 할 수 있겠는가? 바보만이 할 수 있다.


깊은 지혜는 우리의 이성을 누그려 뜨려야 나온다. 광대의 바보 같은 말 한마디가 왕의 눈앞에서 지혜의 번갯불을 일으킬 수 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제갈공명은 깊은 명상에 빠진다. 바보가 된다.


어느 날 불현 듯 한 글자가 깊은 무의식에서 솟아올라온다. ‘화(火)’였다. 화공으로 100만 대군을 격파한다.

현대사회는 바보를 따로 격리시킨다. 그들은 황금만능사회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을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겐 그들은 눈앞에서 치워버려야 할 존재일 뿐인 것이다.

바보가 사라진 현명한 자들만 사는 이 세상은 어떤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문명사회는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내가 어릴 적엔 한 마을에 바보가 한두 명씩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 이 세상이 갑자기 살아났다.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고 깊은 잠에 빠졌던 산과 들,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지금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무섭다. 침묵을 지키는 건물들, 산과 들, 하늘이 무섭다.


우리는 다시 바보를 불러와야 한다. 우리 안의 바보가 깨어나야 한다. 그들만이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바보를 친구같이 하면 깨달음이 오리니.

송곳 끝 날카롭되 튀어나오지 않게 하면

한 소식 전하는 진정한 수행자니라.


- 진각혜심, <언제나 새벽 같이> 부분



마음은 ‘언제나 새벽 같이’ 깨어 있어야 한다.


선사는 깨달음의 비결을 노래한다. ‘바보를 친구같이 하면 깨달음이 오리니.’ 우리 안의 바보가 바로 불성이라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