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 레온 페스팅거
초등생 2명을 성추행하고 또 다른 초등생을 성추행하려 한 70대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말했단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옆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문 열고 나가다 자주 마주친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를 애 엄마가 데리고 나올 때 쯤 나도 나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나눈다. 딸아이도 그 작은 입으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그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여자 형제도 없이 자라고 딸도 없어 딸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다. 나중에 손녀가 태어나면 내가 길러야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기를 수 있을 진 모르겠다. 말이 그렇지 아이 기르는 게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작은 여자 아이를 안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킬 때가 있다. 후배가 집에 놀러 올 때 데리고 오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는 내게 안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리 와’하고 팔을 벌리고 있으면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는 아빠 눈치를 보다 아빠가 허락한다는 눈짓을 보고선 내게 안긴다. ‘참 가볍다. 사람이 이렇게 가볍다니!’ 신기하다.
사람이 아니라 무슨 요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서 아내가 말한다. “제대로 못 안았네. 그렇게 여자아이 한 번 안고 싶어 하더니.” 나는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내려놓는다. 작고 가벼운 요정이 내려간 무릎의 빈공간은 신성하다는 느낌이 든다. 많이 안다 보면 잘 안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이웃집 아이도 쉽게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 가족 같은 사랑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성폭행이 일어났을까?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의 마음을 잘 아는데, 그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면 그 마음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단순하게 살던 공동체 사회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서로 소중히 대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모래알처럼 흩어놓는다. 우리는 모래알처럼 버석이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 그 70대 노인은 행상하면서 점점 더 모래알 같은 삭막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서로를 경계하는가? 그 노인의 ‘성 충동’은 쉽게 약하디 약한 여자 아이에게 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를 따스하게 맞아주는 마을이 있었다면 그가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 세상은 정글처럼 보였을 것이다. ‘세상이 다 그렇지 않은가?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게 세상 아닌가?’ 그는 정글의 야수가 되었던 것이다.
‘야수가 된 자신의 마음’을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주 서서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우리사회는 인간이 되기보다 야수가 되게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치열한 입시, 취직의 관문을 뚫기 위해 우리는 옆 친구도 돌아보지 않는 사나운 짐승이 되어야 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존재’이다. 사람의 진짜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깊은 무의식’에 있다. 인간은 결코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존재이다. 인간에게 이성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려는 생각은 근대 산업사회의 시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엔 무엇이 살고 있나? 야수가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런 우리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만이 우리 안의 야수는 다스려질 수 있을 것이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나 혼자 자라겠어요》부분
가축은 안에 ‘야수’를 품고 있다. 언제 야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가축이 되어버린 인간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길러지지 말아야 한다. 혼자자라야 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야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