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見物生心)

by 고석근

견물생심(見物生心)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 - 칼 융



TV 드라마 ‘멧돼지 사냥’을 보고 있다. 멧돼지들이 밤에 자주 출몰하여 채소밭을 마구 파헤쳐 놓는다.


마을에서는 멧돼지를 일망타진하기로 결정한다. 사냥개들을 데리고 사냥꾼들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주인공 남자는 혼자서 멧돼지를 쫓다가, 바람도 없는데 풀숲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엽총을 쏜다.


사람의 짧은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아, 내가 사람을 쏘았구나!’ 망연자실 서 있는데, 마을의 후배가 다가온다.

그는 마을의 후배를 황급히 데리고 멧돼지를 쫓자며 다른 곳으로 간다. 후배는 의아해하지만, 그를 따라간다.

며칠 전에, 주인공 남자는 로또 1등에 당첨되었었다. 아내와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가서 10억을 타왔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하늘에서 떨어진 로또 당첨금 10억,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는 잦아들까? 회오리바람으로 커져가며 마을 전체를 휘감아 버릴까?


주인공 부부는 마을 잔치를 연다, 웃음이 여기저기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10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크게 말한다. “고생 많았어. 이제 좀 편안하게 살아야지!”


10억이 일으킨 마음의 파문이 멧돼지 사냥을 만나 회오리를 일으키며, 태풍으로 발전하고 있다.


태풍의 핵 속에 있는 마을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하다. 주인공 부부의 아들과 친구인 치매 할머니의 아들이 함께 행방불명된다.


주인공의 핸드폰에 발신번호표시제한의 전화가 걸려온다. “네가 사람을 죽인 것을 알고 있다. 5억을 준비하라!”


주인공은 멧돼지 사냥 때 자신을 본 후배를 의심한다. 밤에 그를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고는 땅에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아온다. 발신번호표시제한의 전화도 걸려오고. 주인공은 혼란에 빠진다.


아들을 입원시키고 주인공은 5억을 준비한다. 돈 가방을 저수지 입구에 놓고 근처 숲에서 엽총을 겨눈다.


우리의 마음은 몸의 한 측면이다. 몸이 물질을 만나 반응이 일어난다. 물질을 만나거나 만난다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이 일어난다.


견물생심이다. 어떤 물질을 보면, 욕심, 무엇을 원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욕심이 안 일어나는 게 아니다.


로또 1등이라는 돈, 물질에 대응하는 언어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모두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살아갔을 것이다. 바다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로또 1등의 바람은 태풍의 핵이었다. 사람들 깊은 마음속에 잠자던 야수의 본능을 마구 일깨웠다.


인간은 한순간에 야수가 될 수 있다. 오래 전에 읽은 중국의 옛이야기, 형제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형이 흙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금가락지를 발견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금가락지를 멀리 던져 버렸다.


금가락지는 그 형제에게 아무런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 흔적도 없이 다시 흙속으로 묻혀버렸다.


물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시대의 화두다. 눈앞에 수시로 출몰하는 금덩이들 앞에 우리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다.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우리 얼굴은

시원한 빗줄기를 한 번 더

느끼길 원할겁니다


〔......〕


삶이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면

우리 영혼은

차라리 슬픔의 고요한 품속

허탈한 웃음에서 휴식을 찾을 겁니다


- 헨리 벤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부분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이었다. 야수의 본능을 억제하고 살 수는 없다. 고요한 마을, 이건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원시인들은 누구든 물질을 많이 소유하지 못하게 했다. 우연히 진귀한 것들을 얻게 되면, 오래 갖고 있지 못하게 했다.


삼라만상 다 영혼이 있어, 그 영혼의 길을 막으면 재앙이 온다고 했다. 얼른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다. 선물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부자들은 자주 잔치를 베풀어 다시 가난해져야 했다. 부족 전체가 물질이 일으키는 거센 파도를 함께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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