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동진(和光同塵)

by 고석근

화광동진(和光同塵)


사람은 빛의 모습을 추구한다고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을 의식화해야 밝아진다. - 칼 융



TV 드라마 ‘오늘의 웹툰’은 웹툰 팀이 본부장과 경쟁업체 영투의 온갖 권모술수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본부장과 경쟁업체 영투는 악의 축이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웹툰 팀이 멋진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없었다면,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처음 봤을 때 묻는다. “너는 누구냐?” 메피스토펠레스는 대답한다. “나는 악마입니다. 하지만 선을 이룩하는 힘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눠서 본다. 그리고는 선은 좋은 것, 악은 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선악이 분명하다. 어린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어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내게 어떻게? 항상 사랑을 듬뿍 주던 어머니가?’ 아이는 큰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어머니도 인간이 아닌가?


어떻게 항상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줄 수 있는가? 가끔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이런 얼굴 표정이 어린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마녀, 계모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마녀나 계모가 나오는 전래 이야기다. 아이는 마녀, 계모 이야기를 들으며 무서웠던 어머니는 마녀, 계모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어머니로 남는다. 그러다 아이는 커가면서 사람 마음의 이중성을 깨달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마음에 머무는 어른들이 있다. 악은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악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선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을 밖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아니 다중적인 마음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


신화에는 좁은 해협을 빠져나가는 영웅이야기가 있다. 간신히 해협을 빠져나가자마자 해협은 하나로 합쳐진다.


대극합일(對極合一)의 상징이라고 한다. 영웅이 되려면, 어느 한쪽이 아니라 다른 양쪽을 합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 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선과 악을 선명하게 나눠서 보는 사람은 이 세상을 망치는 사람이다.


악을 단죄하겠다고 나서는 히틀러 같은 정치 권력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신경증에 걸리는 이유는 선과 악을 통합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여러 마음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화광동진, 우리는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선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도 세상의 온갖 더러움, 악들과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


선과 악은 없다. 우리가 매순간 마주치는 상황에 따라, 선악은 달라진다. 물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선이지만, 홍수를 일으키는 물은 악이다.


하지만 우리는 홍수를 일으키는 악한 물을 소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홍수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도가 나온다.


코로나 19는 전 지구에 창궐하며 우리에게 온갖 바이러스, 병균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19가 전해주는 지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현대 인류는 신경증에 걸린 듯하다.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

가만! 내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 하정심, <찻물 끓이기> 부분



시인은 찻물을 끓이며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 새, 미움이 다 사라지는 경이로운 체험을 한다.


그렇다. 우리 마음에는 애초에 미움은 없었다. 마음이 잠시 미움의 모습을 띄고 나타났던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미움은 가라앉는다. 파도가 가라앉듯.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건, 거대한 바다 같은 마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극기복례(克己復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