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학(爲己之學)
저는 그저 기생으로서 힘껏 제 명을 다하고 이슬처럼 스러지고 싶을 뿐, 굳이 무엇을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든 공부란 것은 혼자서도 늘 충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황진이
“공부해서 남 주자!”는 말은 말 자체는 참으로 멋진 말인데, 공부해서 남에게 주고 싶다고 해서 줄 수 있을까?
길 가다 쉬도 때도 없이 마주치는 광신자들. 그들은 어디서 ‘한 소식’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신념 있는 얼굴’ 이런 얼굴이 무섭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들이 남에게 피해를 줘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
나이 들어 ‘꼰대’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그들도 신념에 차 있다. 산에서 우연히 만나는 노인들, 그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들의 입은 닫힐 줄을 모른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중에 나도는 우스개,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이런 신념가들이 힘을 갖게 되면 무섭다. 그들은 역사적 사명에 몸을 바쳤기에 죽음조차 그를 제어하지 못한다.
꽃은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향기를 주게 된다. 태양도 자신도 모르게 만물을 살려낸다.
꽃은 스스로를 얼마나 매섭게 단련시켜 왔을까? 태양은 그 오랜 세월동안 쉼 없이 불타 타오르고 있다.
그 결과가 향기와 빛으로 나타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살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공부해서 남 주자! 얼마나 고상한 말인가?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남들에게 뽐내고자 하는 검은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공부의 목적은 남을 위한 공부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했다.
인문학의 봄이 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서적들을 읽고 인문학 관련 유튜브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면 자신을 위한 공부가 될까? 자신도 모르게 남을 위한 공부, 남에게 뽐내려는 공부가 될까 걱정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자신이 극복한 일들만을 말하라! 나머지는 요설이다!”
인문학 서적들에는 글쓴이가 극복한 일들만이 쓰여 있을까? 인문학 강사들은 자신이 극복한 일들만을 말하고 있을까?
인문학 책들에는 인문학 지식이 잔뜩 나열되어 있고, 인문학 강사들은 자신이 배운 지식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공부를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가 공부한 학교 공부가 그런 방식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려면, 극복한 일들만을 말하는 강사에게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에 ㅎ 출판사에 만든 ㅎ 문학예술연구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강좌에서 문학 공부를 했다.
바람결로만 듣던 시인, 작가들의 강의를 들으며, 니체의 ‘극복한 일들만을 말하는’ 스승들을 보았다.
경이였다. 온몸으로 한 시대를 밀고 가는 문학 예술인들의 강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강의였다.
그런 강의를 들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초극해가는 공부, 바로 ‘자신을 위한 공부’다.
지식을 쌓는 공부를 하게 되면, 공부가 현실과 유리된다. 자신이 체험한 생생한 현실이 공부의 소재가 되지 않고, 머릿속의 자식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런 지식들은 현실을 돌파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책상물림들의 비현실성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교육이 지식위주라 그런 사람들이 유명 저자나 강사로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겐 그런 공부는 무용지물을 넘어 해악을 끼치게 된다.
차라리 인문학 공부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을 오히려 더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지혜를 찾기에, 이 세상의 난관을 잘 헤쳐 나간다. 그들에게는 온몸으로 익힌 지혜들이 많다.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 심호택, <똥지게> 부분
우리의 공부는 철저한 위인지학이었다. 출세하여 여봐란 듯이 살아가는 것. 아마 대다수 문명사회의 공부가 이럴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왕조를 세운 사람들도, 역사의 획을 긋는 사람들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나왔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강자로 보이는 건, 그들이 기득권을 움켜쥐고 서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