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동체(一心同體)
개성은 일반 생활의 소금이다. 사람은 군중 속에서 살아야 할지 모르나 군중이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먹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개인의 과수원을 가질 수도 있고, 남이 모르는 샘물에서 물을 마실 수도 있다. 남에게 도움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 H. 반 다이크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다가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욕하기도 한다. 완전히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딴 세상에 다녀 온 것 같다. 이 아비규환의 세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나는 기분, 이 기분을 위해 우리는 개처럼 일한다. 잠시 ‘정승’이 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도, 연극을 보러 가는 것도, 미술 전시장에 가는 것도, 술집에 가는 것도, 카페에 가는 것도, 오락실에 가는 것도, 이 세상이 아닌 곳에 가고 싶어서다.
한 세상을 살다가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이 세상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이 생지옥을 잠시 떠나는 것,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해진다. 최근에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한 이유다.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것.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론이다.
그리스 아테네는 직접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서양 문화의 시원이지만, 페르시아 같은 큰 나라들로부터 수없이 침략을 받았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연극이 엄청나게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도시국가에 수백 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연극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하나가 되어갔을 것이다. 그들은 일심동체,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힘으로 자신들의 조국을 지켜냈을 것이다.
연극을 보며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마음, 이 동일시의 마음이 눈물로 흘러내리며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 카타르시스가 오랫동안 서양의 미학이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아테네 같은 공동체가 아니다.
개인이 중요해진 사회다. 개인이 쉽게 자신이 속한 단체에 맹종할 때, 전체주의, 파시즘이 온다.
개인이 깨어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맹목적인 국가, 사회에 대한 충성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거리두기의 미학’을 내세웠다.
드라마에 몰입하지 말자는 것이다.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한 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독재 국가의 극장에서 국민들이 연극을 보고는 한껏 눈물을 흘리며 나오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독재자에게 충성을 다 바치게 된다. 우리의 드라마도 그렇다.
드라마를 보며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되면, 그들과 자연스레 동일시하게 된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잠시 딴 세상에 갔다가 돌아오면 누추한 현실.
그 누추한 현실에 안주하고 싶겠는가? 다시 떠나게 된다. ‘환각’의 세계로. 마약을 하고, 마약 같은 음료수들을 마셔야 하고, 마약 같은 글들을 읽어야 한다.
공부 모임에서 한 회원이 최근에 연극을 보았단다.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기법이 연극에 배어있었단다.
그래서 그녀는 연극을 보는 내내 연극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아픔이 일주일이나 갔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드라마, 연극을 보며 힐링을 넘어서야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해 힘겹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두 발로 딛고 있는 이 땅이니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삶이니까. 잠시 환각에 젖는 기쁨을 뿌리쳐야 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나는 언제나 도시를 원한다
도시의 흥청거리는 군중 속에 있기를 원한다
군중은 커다란 감정을 가진 파도와 같은 것이다
어디로나 흘러가는 하나의 왕성한 의지와 애욕의 구름이다
〔......〕
구슬픈 봄날의 해질녘
이 사람의 무리는, 건축과 건축의 처마를 헤엄쳐
어디로 어째서 흘러가려고 하는지
내 슬픈 우울을 감싸고 있는, 하나의 크나큰 지상(地上)의 그늘
떠도는 무심한 파도의 흐름
아아,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이 군중의 파도 속을 밀고 밀리면서 가고 싶구나
파도의 행방은 지평(地平)에 아스라한
하나의, 단 하나의 <방향>만을 향해 흘러가자꾸나.
- 하키와라 가쿠타로, <군중 속을 찾아서 걷는다> 부분
시인은 ‘구슬픈 봄날의 해질녘/-/ 아아,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이 군중의 파도 속을 밀고 밀리면서 가고 싶구나’하고 노래한다.
그 파도의 흐름이 ‘지평(地平)에 아스라한/ 하나의, 단 하나의 <방향>만을 향해 흘러가’는 것을 알기에.
그는 ‘개인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