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종복배(面從腹背)

by 고석근

면종복배(面從腹背)


나의 철학은 위계질서를 목표하며 결코 개인주의적 도덕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동물들은 길을 가다 눈을 마주치게 되면 서로를 바라본다. 눈을 먼저 내리까는 동물이 약자가 된다.


인간도 동물이라 보는 자는 강자고 눈을 피하는 자는 약자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육체적 힘만으로 서열이 정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정신’이라는 게 있어, 고매한 정신을 지닌 인간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지배와 복종, 이렇게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된다. 그저께 공부 모임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회원이 말했다.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찬물 마시는 것에도 서열이 있어요. 그런데 힘든 학급 일을 할 때는 강한 아이들이 앞장을 서요.”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이 아닌가? 평등은 모든 인간을 평균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원시인들을 보면, 전쟁을 할 때는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앞장을 서서 지휘를 한다. 사냥 할 때는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앞장을 서서 지휘를 한다.


겨울에 한가할 때는 영적 지도자가 부족 구성원들을 지도한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소중하게 대한다.


이런 게 평등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평등의 가치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잘난 사람을 깎아내리려 한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잘난 부분에서는 복종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잘난 부분에서는 남들을 지배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자가 되려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어.’

이런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살아간다. 외롭고 쓸쓸한 삶이다. 견딜 수 없어 쾌락에 빠져든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관료제다.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제도다.


이런 제도에서는 위에 있는 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자신보다 못난 점이 있어도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면종복배,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하게 된다. 이런 관료제에서는 영혼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명령에 살고 죽다보니,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된다. 관공서에 갔을 때, 로봇을 만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관료제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기업체에서 채택한 제도다. 관료제는 뛰어난 생산성을 보증해준다.


이 제도가 국가, 사회조직의 제도가 되면, 효율성에 있어서는 뛰어나지만, 민주적 가치의 실현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는가?


우리는 “나의 철학은 위계질서를 목표한다”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주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위계질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 없는 관료들이 판치게 되고, 그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길을 찾게 된다.


공공의 가치는 사라지고, 끼리끼리 뭉쳐 살아가게 된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되는 무서운 사회가 되고 만다. 고대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는 그런 가치들을 설파하는 소피스트들에 맞서 공동체를 위한 정의를 부르짖다 독배를 마셔야 했다.


지금까지 그의 정신은 살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그를 따르고 있다. 그의 정신에 우리는 기꺼이 복종하고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귀울이는 것.


- 최영미, <권위란> 부분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작아져 하나의 티끌이 되어 버린다. 한평생 허공을 이리저리 떠돌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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