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무치’(厚顔無恥)

by 고석근

후안무치’(厚顔無恥)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 반 고흐



살아가면서 가끔 후안무치,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돈을 떼일 때가 그런 경우다.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은 항상 이렇다. “돈이 거짓말하지 사람이 거짓말하나?”


투명인간 화법이다. ‘아니? 네가 돈 빌려가고서 네가 돈 떼먹은 사람 아냐? 네가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

그는 돈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서 자신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아무리 화가 나서 얘기해도 그는 듣지 못한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으니까? 그는 우리를 비웃는다. ‘돈이 거짓말한다고 했잖아. 내가 아니라. 이 바보야!’

그의 처세법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이 말은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이다.


도둑이 아닌 우리는 고스란히 도둑의 매를 맞아야 한다. ‘헉!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갑자기 우리는 죄인이 된다. 돈 문제에 얽혀 내가 들은 말 중에 ‘돈 때문에 그러세요?’하는 말도 있다.


내게 돈으로 피해를 입히고서는 ‘나를 돈밖에 모르는 소인배’로 만들어 버린다. 갑자기 소인배가 된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니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화내고 속 끓이다 보면, 나만 손해니까. 내 몸이 알아서 스스로를 정화하는 것 같다.


결국 그렇게 돈은 분배가 된다. 돈신(神)은 유일신이니까. 모든 것을 단번에 압도해버린다.


돈신의 세계에서는 정의와 공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신을 벗어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돈신을 숭상하는 사람들에게는 가급적 가까이 안 가는 게 상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세상에 돈신이 안 계신 곳이 어디에 있는가? 그래도 돈신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이다. 그 길을 가며 한 세상을 무사히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 얼굴에 등불을 비쳤다고 한다. “왜 그래요?”하고 소리치면, “사람을 찾습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도 역시 소인배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돈신이 전일적 지배는 하지 않았어도 돈신 못지않은 물질의 신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돈신의 세계에서도 ‘사람’은 있을 것이다.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위에 놓는 사람. 한평생 돈신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더라도, 이 세상을 저버리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후안무치, 적반하장의 사람들도 결국 우리의 한 모습이니까. 자신을 용서하듯 그들도 용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불교의 상징으로 본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 진흙 속에서 살아가지만 진흙이 묻지 않는 꽃.

우리에게는 후안무치, 적반하장의 진흙이 잔뜩 묻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본마음에는 진흙이 묻어있지 않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더러워진 것이다. 우리가 본마음을 되찾으면 진흙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것들은 허상이었으니까. 우리의 흐린 눈에 사람의 마음이 진흙투성이로 보였으니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후안무치, 적반하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최영미, <행복론> 부분



시인은 이 시대의 ‘행복론’을 노래한다.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려면, 단 하나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이렇게 살지 않으면, 살아서 지옥에 가게 된다.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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