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適者生存)

by 고석근

적자생존(適者生存)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사람은 그런 고통의 위험과 오랜 자기 지배의 단련 속에서 딴 사람이 되어 나온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세계가 주목하는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문명의 붕괴’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과거 여러 문명들의 붕괴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인간의 문명을 자연 과학자처럼 냉철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기본적인 시각은 진화론인 듯하다. 진화론의 중심 이론은 적자생존이다.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에게 생존의 기회가 보장된다는 것.


‘살아남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절체절명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정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라 당연히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적인 존재라, 신(神)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단지 살아남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아닌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런 생각이 공자 한 사람만의 생각일까?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러한 고귀한 마음이 고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사는 게 고달파 마음이 오염되어 있지만, 우리의 깊은 마음에는 ‘생존’을 넘어 ‘삶’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있는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인간이 진실로 찾는 것은 ‘살아있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영웅들은 평소에 ‘고통의 위험과 오랜 자기 지배의 단련 속에서’ 딴 사람이 되어갔다.


평소에 안일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만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통이 적은 사회를 좋은 사회로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회에서는 어떤 인간상이 만들어질까?


깊은 내면의 신성(神性)이 깨어나지 않는다. 깊이가 없는 인간은 말초적인 쾌락에만 탐닉하게 된다.


그런 인간이 득시글거리는 사회가 진보한 사회, 선진국인가? 안락한 전진국에서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최근에 부유한 사람들의 자살률이 가난한 사람들의 자살률을 넘어섰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안락함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인간에게는 크게 두 가지 욕구가 있다. 생존의 욕구와 자기 초월의 욕구이다. 생존의 욕구는 이 세상에서 잘살아가고 싶은 욕구다.


풍부한 의식주, 사회에서의 존재감 등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세계적인 지성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은 대개 ‘진화론자들’이다. 그들은 생존의 욕구가 잘 보장되는 사회를 진보한 사회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다. 인간의 몸은 겉으로는 물질이지만, 사실은 영원한 에너지장이기에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욕구 이상의 영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위급한 상황에서 일신의 생존을 버리고, 고결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남는 개인, 살아남는 문명이 인간에게 목적인가! 현대 문명의 위기가 단지 소멸의 문제인가!


생존의 욕구를 중심에 두는 세계적인 지성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적인 지성들의 등장을 고대한다!


나는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분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한다.


인간에게는 살아남는 것 이상의 고결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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