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제동(萬物齊同)

by 고석근

만물제동(萬物齊同)


자아는 영혼을 가둘 수 있는 유일한 감옥이다. - 헨리 벤다이크



어릴 적에 ‘손톱, 발톱을 깎으면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종이에 고이 싸서 버렸다.


신학문을 공부하는 나는 ‘그렇지. 그런 것을 함부로 버리면 위생에 안 좋겠지.’하고 과학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좀 더 커서 옛이야기 ‘손톱을 먹은 들쥐’를 읽은 적이 있다.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 도령이 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손톱, 발톱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을 어기고 숲에다 버렸다.


그런데 그것들을 들쥐들이 먹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도령은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헉! 이게 웬일?’ 자신과 똑같이 생긴 녀석이 집에 있는 게 아닌가? 놀란 도령은 부모님께 자신이 바로 아들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둘이 너무나 똑같아 부모도 누가 진짜 아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여러 질문을 해 보았다.


가짜 아들은 ‘쥐답게’ 집안 구석구석을 훤히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진짜 아들은 쫓겨나게 되었다.


도령은 갈 데가 없어 다시 절로 돌아갔다. 도령에게서 그간의 사정을 들은 스님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며 집으로 가져가라고 말했다.


도령은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고양이를 본 아들 행세를 하던 녀석은 쥐로 변해 줄행랑을 쳤다.


고양이가 달려가 쥐를 물어 죽였다. 그 가짜 아들은 도령이 버린 손톱, 발톱을 먹고 아들로 변신한 들쥐였던 것이다.


어릴 적엔 허황한 옛이야기로 읽었지만, 이제는 번갯불처럼 번쩍이는 조상님들의 큰 지혜를 본다.


손톱, 발톱은 하찮은 우리 몸의 일부다. 없어도 된다. 하지만 우리가 죽었을 때, 손톱, 발톱의 유전자를 조작하면 다시 내가 태어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조상님들은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삶 속에서 깨달은 집단지성이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고이 보관하는 것도 그것들이 그 사람의 생명 자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인류 차원에서 볼 때 하찮게 보이는 나 한 사람의 가치는 어떨까? 나 하나 없어진다고 인류가 뭐 어떻게 되나?


하지만 인류가 멸종해도 하찮아 보이는 나 한 사람이 살아남으면 나 한 사람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다시 인류사가 시작될 수 있다.


인간과 이 우주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만물제동, 만물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불교의 경전 ‘화엄경’에서는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라고 말한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이치를 망각하고 살게 되었을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마구 지구를 파헤치고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게 되었을까?


‘자아(自我)’라는 망상 때문이다. 인간은 ‘자의식(自意識)’이 있어, 자신이 이 우주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한다.


이 망상에 한번 빠지면. 오로지 자신만을 챙기게 된다. 인류는 지금 망상장애에 걸려있다.


그래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다른 것들을 쫓아내버렸다. 그 모든 다른 것들이 지금 지구에서 인간행세를 하고 있다.


인류가 어떻게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해내야 할 이 시대의 소명이다.



나는 내가 그릇인 줄만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허기의 용병이었다.

〔......〕

어느 날 내 몸이 다만

통로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하늘이 내려와 소롯이 안기었다.

담고도 남았다.

이내 허기도 포만도 사라졌다.


- 김규성, <몸의 증언> 부분



우리 마음에 우주가 다 들어온다. 그 생각에 한번 빠지면, 자신이 우주만큼 크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 나무, 돌멩이, 풀에게도 우주가 다 비친다. 만물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모두 하나로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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