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by 고석근

변신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는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들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다. ‘새로운 몸으로 변신한 형상들을 노래하라고 내 마음 나를 재촉하니’


시인이 노래하는 신들과 영웅들은 변신의 귀재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

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살아남은 이유는 상상력, 변신의 힘에 있다고 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뱀은 허물을 벗지 않으면 죽는다. 인간도 이와 같다. 낡은 사고의 허물 속에 언제까지고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죽고 만다.”


그림책 후지시마 아오토시가 지은 ‘가을 논 한 복판에서’에는 작은 변신 이야기가 나온다.


민이는 아빠의 낚싯대를 빌려 집 앞 도랑으로 낚시를 간다. “꼭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거야!”


하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다. 민이는 낚싯대를 내던지고 털썩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얘! 얘!” 주위를 들러보니 논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허수아비다. “저기, 나도 낚시를 해보고 싶어서.” 둘은 서로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민이가 된 허수아비가 물고기를 물통 가득 잡아온다. 민이가 “우와!” 소리를 지르고, 이어서 말한다. “다음에는 고추잠자리 잡는 법을 가르쳐 줄래?”


나도 어릴 적 집 앞 도랑으로 낚시를 자주 갔다. 혼자 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찌를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아마 민이 같은 상상도 많이 했을 듯하다. 인간은 상상을 하면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수많은 변신을 했다. 그 많은 변신들을 단순화시키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우화(羽化)일 것이다.


나는 30대 중반까지 애벌레로 살았다. 아마 수없이 나비의 꿈을 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지 나비가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서 애벌레를 고수했을 것이다.


애벌레는 지친다.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비상의 충동으로 잠을 설치게 된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오른다.

교직에 있을 때, 경남의 거창고등학교에서 수련회를 한 적이 있다. 복도 위에 다음과 같은 현판이 걸려있었다.


‘직업 선택 10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오! 내 안에서 애벌레가 마구 꿈틀댔다. 애벌레는 내 몸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뒤 나는 집을 떠났다. 세상은 한없이 넓었다. 꼬물거리며 사방팔방으로 기어 다녔다.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들이 땅에 내려올 때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아, 같은 인간인데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폈다하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제 어렴풋이 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비법을. 하지만 아직 나는 여전히 꼬물거리며 살아간다.


나는 이따금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 하늘을 날아다니다 돌아온다. 니체는 죽음은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누구나 나비가 되어 창공 저 멀리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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