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얇다

by 고석근

귀가 얇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너는 귀가 얇아!”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귀가 얇다는 것은 자신이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그대로 잘 믿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부모님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보았으니 내가 그야말로 말갛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는 아버지 말씀을 속으로 비웃었다. “흥, 아버지가 그렇게 사셨잖아요.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속아 피해를 봤다. 그때마다 100%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지?” 어떨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사람을 둘로 나누는 습성이 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항상 선한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당했다. 대체로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고 좋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상처를 받아가며 내가 마키아벨리처럼 인간을 바라보게 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아니, 인간은 바뀌지 말아야 한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은 내가 ‘돈키호테’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천하를 종횡무진하다.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자마자 죽게 된다.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제정신은 현실을 충실히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현실에 충실하게 되면, 이 세상은 멸망하게 된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기에, ‘생각하는 인간’은 운명이다.


생각은 꿈과 현실 모두를 아우러야 한다. 그런데 한 인간이 이 상반된 두 역할을 하게 되면 정신이 분열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그 두 성향을 나눠서 담당하게 진화하였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함께 어우러져야 좋은 세상이 된다.


그러면 이상주의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초지일관(初志一貫), 누가 뭐래도 자신의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야 한다.


성격대로 살다가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운명이니까. 우리는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운명을 사랑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을 맞게 된다. 이상주의자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고, 현실을 삶의 중심에 놓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내가 만일 현실주의자로 탈바꿈 하려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글도 쓰지 못하고 강의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부공부모임이 벌써 6년차를 맞고 있다. 다른 공부모임의 한 회원이 말했다. “선생님, 부부공부모임이 아직도 되고 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점점 좋아지고 있네요.” 그녀는 “부부가 함께 공부하게 되면 서로 싸우게 되던데요”하고 말했다.


아내도 함께 참가하는 부부공부모임이 잘 되고 있어 너무나 기쁘다. 부부가 함께 공부하니 부부들의 비밀이 하나하나 들춰진다.


서로의 배우자를 흉볼 때가 많다. 그런데 그 흉들을 잘 살펴보면, 다들 반대 성향이라 일어나는 것들이다.


부부들 모두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들이다. 어떻게 용케 서로의 반대 성향을 알아봤을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주며 티격태격 잘살아가고 있을까? 각자 혼자 있을 때는 약한 자가 되는데, 둘이 함께 나란히 앉아 있으면 천하무적의 강자들 같다.


MBTI 성격 검사를 해 보면 나와 아내도 완전히 정반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귀엽다.


어떨 땐 서로의 반대 성향이 극도로 표출되어 서로 안절부절 못할 때가 있지만, 곧 하나로 어우러진다.


천지자연의 운행 원리는 음양(陰陽)의 조화다. 아내는 가끔 내게 ‘고집불통’이라고 말한다.


고집불통은 내게 영광의 칭호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여실한 증거다. 가끔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면서 내가 잘 살아가고 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원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