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역설

by 고석근

모순과 역설



어제 공부 모임에서 한 회원이 말했다. TV 프로 ‘궁금한 이야기 y’에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 친아버지가 나왔단다.


친엄마도 묵인하고 있었단다. 다들 경악했다. 왜 고도로 발전한 현대문명사회에서 이런 반인륜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걸까?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했다. 그래서 동물적인 욕구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인간세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원시인들은 근친상간 금지를 엄격하게 지켰다. 밖에 나갔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딸이 혼자 있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위와 장모가 각자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못 본 체 피해갔다고 한다. 이렇게 성의 금기가 엄격했던 이유는 사회질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근찬상간으로 태어난 인간은 어떤 정체성이 주어져야 하는가? 사회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문명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익명이 되어버린다. ‘이름’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쉽게 ‘인간의 탈’을 벗을 수 있다. ‘벌거벗은 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해보면 인간화,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익히며 인간이 되어간다. 아버지라는 언어가 몸에 배이며 아버지가 되어간다.


인간의 여러 다양한 이름들은 다 언어를 익히며 몸에 배어간 것들이다. 이름에 맞게 살자!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그런데 언어는 이분법이다. 세상을 둘로 나눠서 본다. 낮과 밤,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좋음과 나쁨...... .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둘로 나눠서 보게 된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기는 참 힘들다.


선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면 그대로 보기가 힘들다. 좋은 나날 속에 나쁜 나날이 있는 게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실상은, 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라는 것이다. 역설이다. 사랑에 미움이 함께 있고, 선에 악이 함께 있다.


어릴 적에는 세상이 선명하게 둘로 나눠진 것으로 안다. 사랑은 사랑이고 미움은 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즐겨 읽는 책들은 선악의 선명한 대립이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가며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 세상이 모순이 아니라 역설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친딸을 성폭행한 그 남자도 언어를 익히며 이 세상을 모순으로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자식은 자식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는 아버지와 자식의 이름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면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고 좋은 아버지가 되리라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다. 몸에 배인 언어가 중요하다. 그는 쉽게 아버지의 탈을 벗고 짐승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철저히 되어야 아버지답지 않은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 선을 분명히 알아야 악을 제어할 수 있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사랑 속에 미움이 있다는 신묘한 역설을 알 수 있게 된다.


상황에 따라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상황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능력... 이런 능력이 없으면 정신이 분열된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운수 좋은 날에 운수 나쁜 날이 겹쳐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언어를 제대로 익혀야 한다. 지식위주의 교육은 죽은 언어를 배우게 된다. 죽은 언어를 익히며 우리는 신비로 가득 찬 삶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는 모순의 세계다. 낮은 낮이고 밤은 밤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지만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서로 섞이며 여러 형태로 무한 변신한다. 이 중중무진(重重無盡) 세상에서, 낮을 낮으로 보고 산을 산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라는 언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되면, 상황에 따라 아버지도 되고, 남자도 되어야 하는 변신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상황을 읽는 힘, 때를 아는 힘, 이 힘을 갖춰야 한다. 이 힘은 언어에서 나온다.


일상어에서 시적 언어까지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모순의 세계를 벗어나 신비스럽고 풍요로운 역설의 세계에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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