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by 고석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TV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온다.


“저 녀석은 경찰을 하지 않았으면, 깡패가 되었을 거야!”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평하는 말이다.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아주 오래 전에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강력계 사무실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다가, ‘헉!’ 놀랐다. 형사들과 깡패들이 구별되지 않았다.


다들 건장하고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그들은 아마 같은 기질을 타고 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치게 된다.


나는 요즘 중국 사극을 보고 있다. 수나라가 천하통일을 하지만 이내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되는 이야기다.

흥미진진하다. 나는 흠뻑 빠져든다. 온 몸에서 기운이 솟구쳐 나온다. 내 안의 ‘아바타’가 나와 천하를 주유한다.


사람은 겉모습과 전혀 다른 ‘속모습’이 있다. 나는 소심한 성격이다. 그러다보니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멋있어 보인다.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밤새워 읽은 적이 많았다. 낮에는 심약한 나로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나는 돌변한다.

우연히 비급을 얻어 무림계의 지존이 된다. 항상 보검을 차고 백마를 타고 다니며 천하의 영웅들을 제패한다.

학교가 파한 후 버스를 타고 귀가할 때도,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무협지를 보지 않게 되었다. 칼 대신 펜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노트북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선 이백은 말했다. “자고로 문인은 협객을 꿈꾼다.” 오! 나는 감동의 불길에 휩싸였다.


그렇다. 나는 계속 협객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이나 펜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은 같지 않은가?


오래 전에 스승이신 ㄱ 시인께서는 말씀하였다. “겁쟁이가 글을 쓴다.” 사마천도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분노가 터져 사기를 썼다.”


나도 분노가 터져 글을 쓴다. 세상에 ‘구타유발자들’은 이리도 많은데, 심약한 나는 속으로만 분노를 삭여야 한다.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무협지를 보거나 태권도를 배우거나 나이 들어서는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겁이 많아 속내를 다 드러내지도 못한다. 악플이라도 줄줄이 달리는 날에는 온종일 쫄아있다.

이백의 시를 보면 호쾌하다. 협객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만큼은 온 마음을 다해 쓰고 싶다.


나의 지나 온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 인생은 허약한 기질을 타고난 내가 이 세상을 비겁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멋지게 살고 싶어 한다. 쪽팔리지 않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너무나 당연한 그 원초적인 소망이 다양한 각자의 길을 가게 한다.


연쇄살인범도 그 소망이 이끄는 대로 길을 가다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누가 곁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깡패가 될 사람이 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잔혹한 게임을 하다가 멋진 수사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트북 자판기를 두드리는 순간에는, 나는 천하의 지존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될 때까지 너무나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다. 무협지를 보는 열정이 세상을 등지게 하였으면, 나는 한평생 냉소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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