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다 닮는다
괴물과 싸울 때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상당히 오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에서
중국 TV 드라마 ‘강희왕조’를 보며 생각한다.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말년에 괴물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는 외정과 내정에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그는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교함’을 지녔다. 그는 수많은 권력의 암투를 이겨내고 건국초기의 청나라를 대제국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일반 백성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강희제는 항상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며 통치했다.
그 와중에 많은 뛰어난 신하들이 희생되게 된다. 태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고 황자들은 태자 자리를 향한 권력 투쟁의 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느 누가 청나라 같은 대제국을 통치해도 강희제만큼 잘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강희제라는 한 인간을 생각해 보자.
그가 제대로 된 인품을 갖게 되었는가?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울 때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는 그 이유가 “상당히 오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희제는 끝없이 권력을 탐하는 신하들을 다스리며 그들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고 또한 동시에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 안에는 동물적인 야수성이 있다. 조금만 건드리면 독을 뿜는 뱀이 있고, 배가 고프면 사정없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맹수가 있다.
강희제의 마음에 차츰 그 야수가 깨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항상 자신을 반성하며 천자 자리를 지켰지만, 인간의 한계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용맹하고 간교한 지도자를 원했던 마키아벨리는 실은 공화주의자였다. 그가 모범으로 보았던 로마 공화정(共和政)은 황제와 귀족들과 평민들이 서로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정치체제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당시 로마에는 높은 품성과 학식을 갖춘 황제와 귀족들과 평민들이 있었기에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는 어떠했는가? 모든 권력이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 일인에게 집중된 정치체제였다.
아무리 고매한 인품을 지녔다고 해도 한 일인이 좋은 인간이면서도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강희제는 차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가장 사랑하는 여인, 용비를 비참하게 죽게 한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총애하는 신하들은 조만간 권력의 중심에 들어서기에 그는 항상 뛰어난 충신들을 내치게 된다.
지금은 왕이 없는 시대다. 그 자리에 우리 모두가 앉아야 한다. 모두(民) 왕, 주(主)가 되어야 하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民主主義)다.
모두가 왕 노릇을 제대로 하게 되면, 이 시대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왕 노릇이 버거워 괴물이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왕 노릇하기가 힘든 이유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오랜 왕정체제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다수는 스스로 왕이 되지 못하고 좋은 왕의 커다란 우산 속에서 편히 살고 싶어 하는 신민(臣民)들이다.
깨어 있는 시민(市民)이 되지 못하고 충직한 신민이 되면, 우리는 서로 미워하며 싸우게 된다. 싸우며 괴물이 되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