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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은 섞는다

by 고석근

고인 물은 섞는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파멸한다. 의견을 바꾸는 것을 훼방 놓는 정신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더 이상 정신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에서



ㅅ 시의 ㅇ 문화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회원을 만났다. 그 회원은 말했다. “다들 지쳐가고 있어요. 회장과 임원을 맡을 회원이 없어요.”


나도 한때 그 단체의 임원을 맡았다가 지쳐서 나오게 되었다. 그 단체는 오래 되었다.


처음에는 회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회원이 100명을 넘어섰다. 그때 나는 임원직을 제의 받았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저렇게 멋있는 문화단체의 임원이라니! 하지만 나는 그들이 철옹성을 쌓고 있다는 것을 차츰 느껴가게 되었다.


‘공신(功臣)들’의 강고한 카르텔.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몰랐다. ‘이 단체를 이만큼 키운 게 누군데?’


그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공통의 생각 같았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 단체는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원이 100명을 넘어서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제 회원들의 개인적인 희생이 아닌, 조직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원칙을 세워가야 한다.


불세출의 영웅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을 이룬 한 고조 유방, 그는 시골의 말단 관료였다.


그는 수많은 장군, 책사들에 도움으로 한나라를 건국했다. 하지만, 나라는 안정을 찾지 못했다.


개국공신들의 득세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책사 장량은 황제의 권위와 국가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온갖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게 된다.


그 와중에 수많은 공신들이 희생된다. 현대 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말했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파멸한다.”


한 개인도 마찬가지도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 계속 변신해야 한다. 같은 생각에 머물고 있으면 그는 도태하게 된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변만화, 이게 천지자연의 이치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를 맺으며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제갈공명을 책사로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를 한다. 장비는 불만이다.


하지만 뛰어난 지도자 유비는 장비를 달래고 제갈공명을 책사로 모시게 된다. 뛰어난 새로운 한 사람이 들어왔기에, 천하를 삼분하게 된다.


강북의 조조와 강남의 손권과 천하를 다투게 된다. 하지만 관우가 손권의 손에 죽음을 당하게 되며 상황은 급변한다.


제갈공명과 신하들이 그렇게 말려도 유비는 손권을 치게 된다. 손권에게 대패하며 국운은 차츰 기울고 끝내는 망국에 이르게 된다.


끈끈한 형제애가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작은 국가일 때는 끈끈한 형제애가 도움이 되지만, 커다란 국가의 운영에는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국가, 회사, 단체들이 이런 우를 계속 반복하는 것 같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개인, 조직은 죽게 되는 것이다.


그 단체에는 참으로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 참으로 안타깝다. 회생의 방법은 간단한데, 굳어진 조직에서는 그 방법을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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