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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by 고석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어린 아이는 순수이며 망각이다.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성철 선사의 유명한 법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묘한 웃음만 지었다.


아무도 그 뜻을 말해주지 않았다.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법어를 처음 말한 사람은 중국 송나라의 청원유신 선사라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법을 설했다고 한다.

“이 산승이 참선을 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곧 산이었고, 물을 보면 곧 물이었다. 그 뒤 스승을 만나 참선법을 깨치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더욱 정진하여 안목이 열리고 난 지금은 그 전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인가? 서로 다른 것인가?”


누구나 산과 물을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것이다. 산이 산이라는 언어로 보이고, 물은 물이라는 언어로 보이기 때문이다.


산과 물이라는 언어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산과 물이 경계가 흐릿한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언어로 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뇌에 새겨진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중생(衆生)이라고 한다. 보이는 것을 실재라고 믿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남이 만든 언어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꼭두각시의 삶이다. 그러다 청원유신 선사처럼 참선을 하며 언어를 넘어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하게 되면, 언어의 안개가 걷혀지기 시작한다.


세상의 실상이 말갛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뇌가 아니라 눈이 보이는 그대로 보게 된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된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산과 물을 보면, 텅 비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자, 우리의 언어로 만들어진 ‘인식의 틀’이 텅 빈 세계를 물질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물질은 실은 에너지장이다. 파동이 낮은 것이 물질로 인식되는 것이다.


참선하며 마음을 맑디맑게 하면, 물질인 색(色)의 세계가 텅 빈 공(空)의 세계로 보이는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하지만 이 우리는 이 텅 빈 세계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동시에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장의 세계에서 물질인 몸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공이면서 색인 경지에서 보면, 다시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이게 된다.


이때의 산과 물은 에너지장이면서 동시에 물질인 산과 물이다. 우리는 이 두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가야 한다.

에너지장의 세계, 영원의 세계에 살아가면서 동시에 물질의 세계,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가 말한 “살아 있는 동안 영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신화가 이러한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삶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신이 죽은 시대라, 우리는 마음공부를 하며 이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超人, 위버멘쉬)이 되어야 한다.


초인은 아이다. 니체는 말한다. “어린 아이는 순수이며 망각이다.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깨어났다. 그는 중얼거렸다고 한다. ‘혹시 내가 지금 나비의 꿈속에 있는 건 아닐까?’


니체는 꿈속이 현실보다 더 진실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은 언어의 안개에 가려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인 육체에 집착한다. 육체가 남자나 여자면, 자신의 실체가 남자나 여자라고 착각한다.


눈에 보이는 산과 물을 실체로 보는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자신을 쉼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진짜 마음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음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나비가 에너지장이다. 이 나비가 진짜 자신이다. 우리는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면서, 물질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잠시 인간으로 지상에 온 것이다. 삶은 연극이다. 남녀역할, 부모역할, 자식역할, 직장인 역할... 모두 배역의 활동이다.


자신이 연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 있는 동안 배역에 충실하다가 역할이 끝나면 나비가 되어 자신이 왔던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아이를 깨워야 한다. 아이는 나비이면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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