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성격대로 살아라

by 고석근


너의 성격대로 살아라


그는 조악한 영혼을 순화시키고 그러한 영혼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갈망을 맛보게 한다. 이 감성의 신과 접한 모든 사람은 보다 풍요롭게 되어 그의 곁을 떠나게 되는데, (...) 그는 다름 아닌 디오니소스 신이다.

- 니체, <선악의 피안>



나는 3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되돌아보면 그때 나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동안 술을 마셔도 피곤하지 않았다. 술에 만취했을 때, 정신은 가장 또렷하게 깨어났다.


온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문학을 공부하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뒤풀이를 할 때, 세상은 화엄(華嚴)이었다.


온 세상이 다 꽃으로 피어났다. 내 일생 최대의 즐거운 잔치였다. 하지만 마냥 꽃향기가 가득한 축제는 아니었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어와 꽃들을 다 떨어뜨리기도 했다. 나는 황량해진 벌판에 홀로 서서 긴 울음을 터뜨렸다.


내 안의 화가 그리도 많았던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그야말로 광란의 축제였다고 한다.


니체는 예술가의 바탕에는 ‘본능적 충동이나 욕구 혹은 의지’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동물적 야수성’에서 예술의 근원적인 동력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라는 것이다.


‘술에 잔뜩 취한 여자들이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춤을 추고 피가 흐르는 날고기를 뜯어먹었다’고 한다.


그녀들은 이러한 야성의 의례를 행하면서 성스럽게 정화되어 갔을 것이다. 축제 후에는 자연스레 건전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성(理性)의 신 아폴론을 섬겼다. 빈농 가정의 장남인 나는 항상 모범이 되어야 했다.


30대에 들어서며 내 안의 동물적 야수성이 폭발했다. 나는 한순간에 화의 화신이 되어 마구 울부짖었다.


나는 그때부터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경배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술을 마시며 디오니소스 축제를 했다.


하지만 나의 경배가 부족했던가! 나는 50대에 들어서며 화병에 걸렸다. 아마 그 전에 디오니소스 축제를 하지 않았다면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MBTI 성격 검사를 해 보면 INFP가 나온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이런 성격이야?’


나는 오랫동안 나를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의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내가 돈키호테라니? 이상주의자라니?’


그러다 ‘아, 맞아!’ 나는 신음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가 “조악한 영혼을 순화시키고 그러한 영혼의 소유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갈망을 맛보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 나는 조악한 영혼이었어!’ 성격대로 살지 않은 대가는 가혹했다. 영혼이 병 드는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접하고서야 나는 ‘새로운 갈망을 맛보게’ 되었다. 나는 ‘이 감성의 신과 접한’ 후에 ‘보다 풍요롭게 되어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고요하다. 마음이 어느 정도 풍요롭게 되었기에 이 세상이 눈부시게 찬란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공부모임에서 청년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하는 분이 말했다. 21살의 한 청년이 말하더란다.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요.’


내가 젊을 때는 봉건적인 사고가 사랑을 가로막았다면, 지금은 자본주의적인 사고가 사랑을 가로막는 것 같다.


우리는 머리 위에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고 맑은 하늘을 봐야 한다. 신동엽 시인은 노래한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


나는 아폴론 신을 섬기며 나의 하늘을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차 나의 길을 갔었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쇠 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속 구름/찢어라, 사람들아,/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마음속의 먹구름을 닦아 없애고 머리 위의 쇠 항아리를 찢은 사람은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


시인은 그때 우리는 ‘외경(畏敬)을/알리라’고 노래한다. 온전한 마음이 되어야 우리는 ‘외경(畏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과 이 세상이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오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천지자연의 춤 한 자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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