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세계다
원근법적 성격(존재자의 원근법적 구조)은 그것을 통해 인간뿐 아니라 모든 힘의 중심이 자체로부터 전 세계를 구성하는 것, 즉 전 세계를 자신의 힘에 비추어 측정하고 감지하며 형성하는 것이다.
- 니체, <힘에의 의지>
스페인의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온다.
“꿈을 꾸는 자와 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것인가?”
답은 꿈을 꾸지 않는 자다. 사람이 꿈을 꾸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시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심어 준 언어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
꿈을 꾸며 살아야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제정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돈키호테가 기사가 되어 천하를 주유할 때, 그의 정신은 최절정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다.
나의 성격은 ‘돈키호테’다. 꿈을 꾸는 사람이다. 나는 30대 중반까지 꿈을 꾸지 않고 살았다.
철저한 현실주의자! 하지만 나는 그때 가장 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도무지 사는 게 신이 나지 않았다.
니체는 “네 자신이 되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되어가며, 나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원근법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이 재편되어 갔다.
석가가 말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그렇다고 나만 존귀하다는 게 아니다.
삼라만상이 다 존귀한, 모두 중심인 세상이다. 공부는 이 세상 속의 나에게서 빠져나와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이 세상의 부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죽으면 이 세상에서 자신 하나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각자 하나의 세계다.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의 부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꿈을 꾸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않으면 세상의 언어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 속의 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자신만의 풍경이 된다.
개성(個性)은 각자 하나의 세계가 될 때 드러난다. 개성은 다른 사람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취향을 갖는 게 아니다.
자신이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큰 병에 걸리거나 큰 사고가 나 자신이 무너질 때, 희미하게 느껴진다.
육신이 약해지면, 내면의 영적인 힘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큰 나’가 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깨닫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부품 하나로 살아간다. 부품의 값을 높이기 위해 일생 동안 분투한다.
‘몸값’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알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니체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다.
모든 생명체는 더 나은 자신을 향해 진화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스스로 진화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인간이 탄생한다.
풍요로운 물질문명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이런 반생명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반대편에 초인(超人)이 있다. 다른 생명체들은 진화가 늦다. 하지만 인간은 당대에 진화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을 발명할 수 있는 존재다. 고대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기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신(神)이 되어야 한다.”
신은 최고의 인간상(人間像)이다. ‘신이 죽은 시대’에 인간은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한다.
신을 향해 자신을 끊임없이 초극해가는 인간이 초인이다. 돈키호테는 집으로 돌아와 ‘제정신’을 차리자마자 죽게 된다.
그는 꿈을 꾸지 않는 삶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