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서정시인은 우선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로서 근원적 일자와 근원적 일자의 고통 및 모순과 완전히 일체가 된 것이며 이 근원적 일자의 모상을 음악으로 만들어 낸다.
- 니체, <비극의 탄생>
경허 선사는 깨달음을 얻고서는 마구 웃었다. 곁에 있던 사미승이 경허 선사가 미쳤다고 생각하여 주지 스님에게 달려갔다.
경허 선사는 어떤 세계를 경험했을까? 깨달음의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니체는 서정 시인이 그런 세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서정시인은 우선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로서 근원적 일자와 근원적 일자의 고통 및 모순과 완전히 일체가 된 것이며 이 근원적 일자의 모상을 음악으로 만들어 낸다.’
20세계의 대표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이 순간을 ‘시가 내게로 왔다’고 노래한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아아,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시(詩)는 언어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를 담아낸다.
반면에 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스레 물질을 넘어서는 텅 빈 허공의 신묘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시가 우리에게 온 순간, 우리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게 된다. 시인은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신비의/모습에 취해/나 자신이 그 심연의/일부임을 느꼈고,/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무아(無我)다. 불교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실체(實體)가 없다고 말한다. 여러 인연으로 나는 잠시 어떤 형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은 음식들로 이루어져 있고, 몸은 계속 새로운 음식들로 교체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은 밖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그 마음도 계속 새로운 마음으로 교체된다.
삼라만상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것도 생성, 변화의 과정 중에 있지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눈에 보이는 자신과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착각이 오래가다 보면,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을 불교의 경전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바르게 보지 않고 거꾸로 보아 헛것을 현실이나 진실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럼 자신과 이 세상을 바르게 보면 어떻게 될까? 반야심경에서는 구경열반(究竟涅槃), 완전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열반은 무엇인가? 헛것을 실체로 보는 미혹과 그로 인해 생겨난 모든 번뇌가 사라진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경허 선사가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을 볼 때는 고통이 가득한 세계였지만, 깨닫고 보니 이 고통의 세계가 바로 ‘황금 연꽃의 세계’로 보여 마구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헛것들이 다 사라진 실재의 세계, 화엄(華嚴)이다. 온 세상이 다 꽃으로 장엄한 세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물질의 세계가 턴 빈 세계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 텅 빈 세계가 곧 물질의 세계라고 말한다.
이것을 현대양자물리학에서는 ‘물질세계가 곧 에너지장’이라고 말한다. 동물은 생각을 하지 않기에 인간처럼 망상에 젖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했기에, ‘생각’에 의해 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생각의 문제다. 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진화하기 전의 동물 상태만도 못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뇌의 작용이다. 눈이 실제로 보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오래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엇이나 오래 보게 되면, 그것들은 물질을 벗어나 에너지로 화한다. 자신의 에너지와 하나로 어우러지게 된다.
우리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사물들이 둘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흐, 세잔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네루다 시인처럼 그림이 자신들에게 왔을 것이다.
그들은 사물들을 오래 바라보며, 자신들이 풀려 사라지고 사물들이 풀려 사라지는 경이로운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신 중심 시대여서, 설령 그러한 세계를 보았더라도 감히 인상(印象)을 그림으로 표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신묘한 에너지의 세계임을 깨닫는 게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자신의 몸과 이 세상의 사물들이 실재라고 믿고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바탕 긴 봄날의 꿈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