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잡스의 점심
그저께 술자리에서 한 여성분이 “고흐 같은 고상한 영혼을 지닌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살아있는 고흐는 얼마나 성가신 존재일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지만 빵이 없으면 아예 살 수 없지 않는가? 고흐가 가장으로서 가족이 먹을 커다란 빵을 가져올 수 있을까?
빵을 가져오지 않는 가장을 좋아할 아내가 얼마나 될까? 한 평생 그림 하나 팔지 못하는 화가라니?
나는 그 여성분이 고흐를 추앙하는 것이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가 고상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고상한 면이 본인에게 있어서다.
우리는 우리 안의 고상한 면을 깨워야 한다. 고흐를 추앙하지 말고 고흐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 여성분이 자신 안의 고흐를 깨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고흐와 함께 살고 싶을까?
우리는 자신 안의 고귀함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이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는 시간에, 소크라테스에게서 제2의 애플을 창업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 먹는 것은 참으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함께 해야 한다면?
더 이상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은 환상일 것이다. 점심 먹을 시간에 배우지 못할 지혜는 더 이상 오래 있어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움이 크면 환상.
환상의 비눗방울을
그저 보시라.
만지지 말라.
만지지 말라.
- 황인숙, <유다> 부분
유다는 주님을 그저 보기만 하지 않았기에, 배신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다른 인간을 우상화한다. 이 세상의 어느 동물도 다른 동물을 우상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다른 생명체들처럼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