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by 고석근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V 드라마 ‘나쁜 엄마’를 보고 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여자, 그녀는 혼자서 돼지 농장을 경영하면서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웠다.


똑똑한 아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었다. 이후 남들이 다 부러워할 이 모자(母子)는 엄청난 비극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한 검사 아들은 또 다른 야망을 품게 된다. 대통령을 꿈꾸는 국회의원의 딸과 결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반신불수가 된 아들,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한순간에 몰락한 모자를 보고 고소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소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아마 동물적 본능(本能)일 것이다.


다른 생명체가 병약해야 그가 나의 먹이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이 동물적 본능을 넘어서는 본성(本性)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차츰 그 모자에 대해 동정심(同情心)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로 얘기하다보니 자신들을 성찰하게 되어, 모자와 같은 감정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게 되면, 본성이 깨어난다. 본성은 인간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며 형성된 인성(人性)들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서양에서 말하는 진선미(眞善美)다. 이 본성이 깨어나면 인간은 고결하게 된다.


본성이 깨어난 마을 사람들은 두 모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주게 된다.


집단지성(集團知性)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집단지성에 의해 사랑 가득한 공동체 사회를 꾸려왔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며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個人)이 탄생했다. 개인은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항상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자연스레 주어지던 성찰을 개인이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일갈했다. 성찰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면, 인간은 습관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사람이 불행을 겪을 때, 고소해하는 마음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된다. 그 응어리진 질시의 마음이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된다.


질시의 마음이 생겼을 때, ‘아, 내가 지금 남을 질시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면, 타올랐던 질시의 불길이 서서히 사그라지게 된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않고 그냥 두게 되면, 마음이 온통 그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공동체 사회가 사라진 현대 문명인들은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 분노, 질투... 같은 악한 기운들이 자신을 해치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이 세상은 생지옥이 되고 만다.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 하정심, <찻물 끓이기> 부분



시인은 ‘찻물 끓이기’ 명상을 한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미움을 다 가져가는 것을 본다.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容恕)만 남겨 놓는다. 미운 누군가와 같은(如) 마음(心)의 얼굴(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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