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하여
오랜만에 한 지인이 전화를 했다. ㅇ 술집에서 만나잔다. 술기운이 있는 목소리다. 곁에 아내도 있는 듯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는 날, 술집에 가는 걸음걸이는 경쾌하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왁자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한 구석에서 지인 부부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니, 지인이 호기롭게 웃으며 나의 술잔에 술을 따른다.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는 말들이 술술 나온다.
말이 말을 만나 말들을 낳으며 말들이 비눗방울들처럼 허공에 난무한다. 술이 만들어내는 한 세상이다.
주모가 안주를 들고 다가왔다. 지인이 나를 소개해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주모가 자신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50대 후반의 주모, 세월의 거센 바람이 할퀴고 간 그녀의 표정을 보며 생각한다. 함께 공부하면 참 좋을 것 같다.
금요일 오전에 시간이 난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술집 이름을 저장하려 하자 그녀가 손사래를 친다.
“내 이름을 저장해 주세요.” ‘아, 저 여인은 한평생을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나는 그녀의 이름을 저장하며 다음 주 금요일 10시에 강의실에서 보자고 말했다. 강의실?
소크라테스는 시장에서 강의를 했다. 그에게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공부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만들어 강의실에서 강의를 했다.
플라톤은 이성(理性)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이 둘은 다 필요할 것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할 강의실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인문학을 강의실에서만 공부해야 하는가? 나도 시장에서 강의해보고 싶다.
조만간 ㅁ 문화단체에서 여는 장타 한 켠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어보려 한다. 돗자리를 깔아 놓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인간의 길을 함께 찾아보려 한다.
술집에서 삶의 이치를 깨쳤을 주모와 강의실과 책에서 인문교양을 익혔을 공부모임 회원들의 만남, 생각지도 못한 창발이 일어날 것이다.
기말고사 보느라 진땀을 흘리는데
학교가 온통 쥐죽은 듯 조용한데
그때 잠깐 내다본
3층, 100미터도 넘는 긴 복도
끝도 안 보이는 복도 중간쯤
비둘기 두 마리 사랑을 나누고 있다
(...)
거참, 거참
잠깐을 눈부신 그 적막 속에
밑도 끝도 없는 저 사랑을
아무 표찰도 시험도 없는 저 사랑을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윤재철, <비둘기와 중간고사> 부분
시인은 시험 감독을 하다 비둘기 두 마리의 사랑을 엿보게 된다.
저 사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시험문제 풀 듯이 사랑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