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때
배우려고 분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열리지 아니하며, 말하려고 하지 않으면 발표를 하지 못하게 되니 사물의 한 귀퉁이를 들어 설명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알지 못하면 반복하여 가르칠 수 없다.
- 공자, 『논어』에서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시골에 살 때 농사짓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파종이 하루라도 늦으면 실패한다고 했다.
이러한 때를 알게 된 사람에게 우리는 “철이 들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공부할 때는 언제일까?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다그친다. “다 때가 있다. 공부도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할 수가 없다.”
정말 그럴까? 산업사회의 공부는 그럴 것이다. 젊을 적에 공장의 노동자가 되기 위한 기술을 익혀야지 나이가 들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탈산업사회다. 지식정보사회, 인공지능시대다. 이러한 시대의 공부는 강제로 지식을 주입한다고 해서 공부가 되지는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지식이 힘이 아니라 창의력, 사고력, 풍부한 감성, 예민한 미적 감수성이 힘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을 만나보면, 많은 아이들이 길을 찾기 위한 방황을 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공부할 때는 언제일까?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는 큰 아이가 말한다.
“아빠, 독일에는 나이가 들어서 대학에 오는 아이들이 많아.”
그들은 비로소 공부할 때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배우려고 분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열리지 아니하며... .”
그렇다. 분발할 때가 공부할 때다. ‘간절하게’ 원하면 구해지고, ‘간절하게’ 두드리면 열리는 것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공부한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다 때가 있다”며 자녀들을 다그칠 때, 자녀들은 공부할 때를 놓치고 말게 될 것이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고
- 야마오 산세이, <왜ㅡ아버지께> 부분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를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그만두지 못했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그만 두고 싶은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었다.
무엇을 절실하게 원할 때, 일단 해보아야 한다. 그러면 신(神), 요정들이 나타나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