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는 사람

by 고석근

일 없는 사람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 임제,『임제록』에서



공부모임의 한 회원이 말했다. “공원에서 햇빛을 쬐고 있는 노인들이 꼭 비둘기들 같았어요.”


참으로 궁상맞은 풍경이다. 그런데 이제 막 겨울이 지나가는 시간에 햇살을 쬐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유럽여행을 다녀 온 회원이 말한다. “그들은 햇빛만 나면 밖으로 나와요. 다들 햇살을 쬐고 있어요.”


화창한 날씨가 많은 대한민국에서 햇살을 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일부러 햇빛을 쬐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바쁜 사람들이 일부러 햇빛을 쬐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러니 햇빛을 쬐고 있는 사람은 할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황제의 일화, 포도주 통에서 햇살을 쬐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 황제가 다가갔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들어주겠다.”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햇빛을 쬘 수 있게 비켜 주시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오!”


그럼 철인 디오게네스와 공원에서 햇살을 쬐고 있는 노인들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디오게네스는 임제 선사가 말하는 ‘일 없는 사람’이다. 아예 ‘일’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해도, 전혀 자신이 그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디오게네스는 ‘개 같은 삶’을 목표로 했다. 그는 견유(犬儒)학파 철인이다. 개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배만 부르면 만족한다.


우리가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때, 우리는 밥을 소화시켰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일을 한 것인가? 하지 않은 것인가? 임제 선사가 말하는 일 없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생각할 것이다. 내 안의 어떤 거대한 힘이 나를 이렇게 하게 하는구나!


하지만 공원의 노인들은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자연스레) 햇빛을 쬐었을까?


아마 많은 노인들이 그런 힘에 이끌리는 것도 있었겠지만, 이제 할일은 없고,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공원에 나가 햇빛을 쬐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제 선사는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걸어갈 때, 걸어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리가 알아서 잘 걸어간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잘 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저절로 돌아가게 천지자연의 거대한 힘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이다.



별들이 글을 쓴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건

나 역시 글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풀어쓴다.


- 옥타비오 파스, <친교(親交)> 부분



우리가 글을 쓸 때, 우리가 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풀어 쓴다.’


삼라만상은 언제나 ‘친교(親交)’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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