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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by 고석근

매뉴얼


그대의 사상과 감정 뒤에, 나의 형제여, 강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그것은 자기라고 일컬어진다. 그것은 그대의 몸속에 살고, 그것은 그대의 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섯 살 딸과 놀 줄 모르는 아빠, 어느 날 딸이 “아빠, 나하고 놀자!”라고 했단다. 당황한 아빠는 아이와 pc 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딸아이가 아빠와는 놀지 않으려고 한단다. “어린이 집에 가는 게 더 좋아!”라고 하더란다.


나는 그 젊은 아빠를 생각하며 나의 젊은 아빠 시절을 떠올렸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랬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저 조그만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해?’ 나는 물끄러미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게 돌파구를 마련해 준 건, 뜻이 맞는 교사들과 함께 만든 공부모임이었다.


그때 나의 머리를 내리친 망치! 임제 선사는 말, “어디에 있건 주인이 되어라. 그리하면 그곳에서 진리가 피어나리라.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피어나는 그 무엇이다!


그 후 ‘주인의 삶’이 나의 화두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감 있게 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난관에 부딪치면 매뉴얼을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뭐라고 하지?’ 우리는 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나의 마음이 먼저다. 니체는 말했다. “그대의 사상과 감정 뒤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그것은 그대의 몸속에 살고, 그것은 그대의 몸이다.”


그는 우리 안에 현자가 있으니, 자신을 믿고 대처하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오랫동안 아빠 역할을 해 왔고, 그 역할에 대한 지혜는 우리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지혜를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내 안의 이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아이 마음과 공감만 하면 어른이 아이와 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나와 함께 놀지 않았다면, 이제 다 커버린 아이들이 나를 어색하게 대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추억이 많다. 함께 가는 곳이 다 놀이터였다. 이번 여름에는 큰 아이도 외국에서 온다고 하니, 작은 아이와 함께 술자리를 자주 가질 예정이다.



아버지는 감자찌개의 돼지고기를 내 밥 위에 얹어주셨다

제발, 아버지.

나는 그것을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그러면 아버지는

얼른 또 하나를 얹어주셨다. 아버지 제발.

비계가 달린 커다란 돼지고기가 내 얼굴을 하얗게 했다


- 황인숙, <딸꾹거리다 1> 부분



아버지는 어린 딸을 사랑해서 돼지고기, 비계를 밥 위에 올려 주셨다.


사랑해서... . ‘사랑’이 모든 폭력의 시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모든 ‘사랑의 매뉴얼’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내면에서 사랑이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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