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황금가지

by 고석근

황금가지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가 잠이 든다. 아리키아의 숲 속 그 어슴푸레한 나무 그늘에서 숲을 지키는 사제. 죽이려고 덤벼드는 사람을 죽이고 언젠가는 그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황금가지』에서



고대의 왕은 사제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성한 인간이었다. 그의 상징은 황금가지였다.


그 마을에서는 남자는 누구라도 ‘숲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전의 숲에 있는 성스러운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서 그것으로 사제를 죽여야 했다.


죽어야 사는 것, 이것이 친지자연의 운행 원리다. 해가 져야 다음 날 아침에 해맑은 해가 떠오른다.


가을에 나무는 잎들을 다 떨어뜨린다. 죽은 나무, 하지만 그 나무에 깃 드는 겨우살이.


그 겨우살이가 황금가지라고 한다. 죽음에서 피어나는 생명, 그래서 사제는 죽어야 했다.


사제는 죽어가면서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사제를 ‘여한이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한준희 감독의 영화 ‘차이나타운’을 보며 황금가지를 생각했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져 이름이 ‘일영’이 된 여자 아이. 그 아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엄마는 여러 아이들을 거둬들이고 식구를 만들어 사채업을 하며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어느 날 엄마는 그녀에게 악성채무자의 아들을 죽이라는 임무를 준다.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하지만 일영은 해맑은 눈빛의 그 청년을 차마 죽이지 못한다. 엄마는 일영을 죽일 킬러들을 보낸다.


일영은 킬러들을 살해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가 물었다. “나를 죽일 거니?”


일영이 대답했다. “네.” 이럴 때 엄마(왕)는 어떻게 할까? 자신의 자리와 조직을 위해 배신자를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할까?


엄마는 조용히 기다린다. 일영이 쏜 총알을 가슴에 맞고, 엄마는 엷게 웃으며 일영에게 열쇠 하나를 쥐어준다.


일영이 지하철 보관함 10번을 열자 거기에는 엄마가 일영을 입양했다는 증서와 일영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일영은 엄마의 후계자로 거듭난 것이다. 새로운 사제, 일영은 멋진 차이나타운의 여왕이 될 것이다.



검은 바위 결 속에 흰 결들이

숨죽인 물결처럼 마음결을 내보이고 있다.

‘어디 살 만해?’

‘아직 개밥바라기가보여’

삶이 느껴지기도 안 느껴지기도 하는 노인들.


- 황동규, <삼척 추암> 부분



‘삶이 느껴지기도 안 느껴지기도 하는 노인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너무나 쓸쓸하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중음을 떠도는 우리의 영혼들, 우리는 확실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확실히 살 수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성(理性)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