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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by 고석근

죽어도 좋아


사랑은 순간에 일어난 우연에서 시작되어, 당신이 영원을 제안하게끔 만드는 보기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 알랭 바디우,『사랑예찬』에서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는 죽음을 넘어서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외롭게 살아가던 박치규 할아버지는 어느 날 공원에 갔다가 우연히 이순례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 그들은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고 동거에 들어간다. 격렬한 사랑은 살아있음의 환희다.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이젠... 죽어도 좋아... .’


‘사랑은 순간에 일어난 우연에서 시작되어, 당신이 영원을 제안하게끔 만드는 보기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남녀가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면, 두 사람은 자아(ego)를 넘어서게 된다. 깊은 마음속의 ‘자기(self)’가 깨어난다.


자아는 육체적 존재인 ‘유한한 나’이지만, 자기는 육체를 넘어서는 ‘영원한 나’다. 영원한 나를 체험한 사람은 ‘죽어도 좋아!’라고 외치게 된다.


그렇다고 영원한 나가 육체와 다른 존재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육체적 존재에 갇히게 된다.


이 갇힌 마음이 자아다. 그러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의 자아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육체를 넘어서는 자기, 영원한 나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의 몸 자체가 영원한 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과 같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겉보기에 그럴 뿐이다. ‘죽어도 좋아’를 경험한 남녀에게도 생로병사가 있을까?


생로병사를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이라고 규정해버리면, 이 고통들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찾아 헤매게 된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온갖 건강식품들은 불로초의 21세기형 변형물들일 것이다. 과연 그런 것들이 정말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까?


인간의 건강한 삶에 필수적인 것은 사랑일 것이다. 오래 전에 ‘이별 없는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


현대인은 사랑이 없기에 이별도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과연 건강은 어떤 의미일까?

진시황처럼 혼자 장수 불사하겠다고 수많은 사람을 고통의 수렁 속에 빠뜨리고서도 건강함 삶이 가능할까?

인간사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사랑의 부재’일 것이다. 영생불사의 꿈을 꾸는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사랑의 회복일 것이다.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부분


요즘 청춘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은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아 본 적이 있을까?’


독기 없는 피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최고의 형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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