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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있으라

by 고석근

늘 깨어있으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 신영복,『강의』에서



오랜만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나는 서예실의 수묵화들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풍경화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고 있으면,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와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각자 따로 존재하면서 하나가 되어 있다. 고대의 그리스의 철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다. 항상 끊임없이 약동하고 있다. 수묵화는 그 순간을 포착했지만, 보는 사람은 약동하는 세상을 본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깨어 있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공통이지만, 잠든 사람이 꿈속에서 보는 세상은 제각각이다.”


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말을 들은 이후, 이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이 말을 생각하며 산을 보았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아, 내가 지금 산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산이라는 언어로 산을 보고 있구나!’


‘그럼, 산을 언어로 보지 않으면 산은 어떻게 보일까?’ 그 후 오랫동안 여러 산을 보았다.


그 말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처음 산을 볼 때는 산은 언어로 보이는 산이었다.


하지만 산을 오래 보고 있으면, 산은 산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과 물과 나무와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


‘아, 바로 수묵화였다.’ 내가 산을 산이라는 언어로 볼 때는 산만 보이고, 물을 물이라는 언어로 볼 때는 물만 보였다.


그러다 그들을 오래 보고 있으면, 언어의 안개가 걷혀지면서 그들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내가 산과 물을 언어로 볼 때는, 나의 사유는 꿈속이었다. 그때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듯 산과 물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산과 물을 오래 보게 되면, 나는 서서히 꿈속에서 깨어난다. 나의 사유는 나를 넘어선다.


나는 산과 물과 함께 하나의 율동(불)이 된다. 이 세상은 원래 하나의 율동이니까. 나는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꿈속에 있게 된다. 인생이 한바탕 꿈이 되어 버린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김종삼, <묵화(墨畫)> 부분



사람과 짐승이 하나가 되어 살았던 세상, 불과 얼마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깨어 있으면, 우리는 느낄 것이다.


서로의 목덜미에 얹히는 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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