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삶
“술은 왜 마셔요?”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무엇을 잊어버려요?” 어린 왕자는 그 술꾼이 안쓰러웠다.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 술꾼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초적인 죄의식을 느낀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데도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자아(Ego)’ 때문일 것이다. 자아는 ‘나’라는 의식이다. ‘나’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자아가 없다. 따라서 동물들은 늘 태평하다. 인간만이 항상 죄의식에 시달린다.
인간의 마음 깊은 속에는 ‘자기(Self)’가 있다. 자기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진정한 자신, 자기는 자신과 삼라만상을 하나로 본다. 따라서 다른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다.
하지만 자아는 자신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존재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 든다.
그러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도록 해! 그들도 바로 너 자신이야!”
그러니 인간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진정한 자신, 자기는 항상 사랑을 가득 품고 있는데, 자아는 항상 자신만 챙기니까.
인간은 깊은 마음속의 자기의 목소리를 듣는 게 두려워진다. 일부러 바쁘게 살아간다.
시간이 나면 술에 취해 자신을 잊어버리려 한다. 술에 취해 몽롱하게 살아가면 힘든 삶이 견딜만 하니까.
살기 위해서는 무엇에건 취해야 한다. 술이 아니더라도 돈에, 권력에, 사랑에, 일에, 취미에, 도박에... .
취생몽사(醉生夢死), 우리는 취해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 안의 자기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자아의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자기가 드러나 이 세상의 참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자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죄의식에 시달리고, 죄의식에 시달리는 자신이 버거워 술에 취한다.
우리는 자아 중심의 삶에서 자기 중심의 삶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쓰레기통엔 코카 콜라와 죠니 워커 빈 병이 쑤셔박혀 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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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 장정일, <하숙> 부분
우리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어두컴컴한 하숙집에서, 우리는 완벽히 취한 인간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