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가 영원이다

by 고석근

찰나가 영원이다


어린 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작은 아이와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 “지웅아, 세월이 참 빠르지?” “응, 언제 내가 이렇게 나이 들었나 생각해. 아직 대학생 같은데... .”


이제 6년 차 회사원이 되었구나! 대학 생활을 원 없이 한 작은 아이, 알파(알코올 파이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다섯 명이 술과 함께 신나는 대학 시절을 보냈지.


사진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아이의 얼굴은 차츰 심각해졌다.


마냥 즐겁게 놀던 작은 아이,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고. 작은 아이는 이제 망연자실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아무리 좋은 것도, 죽을 듯한 고통도 시간 앞에 맥없이 스러진다.


이렇게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 누가 봐도 길이가 같다. 절대적인 시간이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자식을 낳자마자 다 먹어 버린다. 그는 모든 것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산신령들이 바둑을 두는 걸 보게 되었다. 잠시 구경하다 왔는데, 마을에는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한 노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고 다들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니, 그 노인은 자신이 그분의 손자인데, 누구시냐고 되물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상대성 원리’다. 시간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벗어나 카이로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린 왕자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 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


사막의 샘터는 우리의 영혼이다. 항상 맑은 물이 솟아난다. 이 샘물을 마시게 되면, 찰나가 영원이 된다.


그러니까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게 된다. 매 순간 위로 분수처럼 솟구쳐오르는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아이들은 시간이 길다.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매 순간은 살아있음의 환희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감수성이 둔화하게 되면,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별로 기억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이 깨어 있는 아이들은 엄청난 기억 속에 있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은 다 살아있다.


세월이 느리게 흐를 수밖에 없다. 영생은 오래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지나고 보면 찰나가 된다.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찰나가 영원이 된다. 시간은 우리의 가슴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내가 읽은 모든 작가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고,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나의 실제> 부분



‘나의 실제’는 없다.


내 몸은 내가 먹은 모든 음식, 내 마음은 내가 읽은 모든 작가, 내가 만난 모든 사람, 내가 만난 모든 사물이다.


시간, 다른 사람, 이 세상... 이런 것들은 ‘나’라는 의식이 빚어낸 환상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신으로부터 탈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