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되어라

by 고석근

아이가 되어라


그리고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중국 명나라의 왕양명은 양명학을 창시했다. 기존의 유학, 주자학이 공리공담을 일삼는 학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송나라의 주자가 만든 주자학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이치, 이(理)가 우리의 본성(本性)에 있다(성즉리 性卽理)고 말한다.


인간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진리를 알고 싶어한다. 다른 동물들처럼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주자는 이 근원적인 진리가 우리의 본성에 있으니, 본성을 잘 깨우면 진리를 알 수 있고 진리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자학이 세월이 흐르면서 궁극적 진리, 이를 탐구하는데 집중하여 점차 일상적 삶과 유리되어 갔다.

진리를 탐구하면,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진리에 대한 논쟁에 몰두하다 보니, 진리 탐구가 외려 삶과 멀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 양명학이 등장한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궁극적 진리가 마음에 있다(심즉리 心卽理)고 주장한다.


주자학의 성즉리와 양명학의 심즉리, 양명학의 공부 방법은 너무나 쉬워진 것이다. 내 마음에 진리가 있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은 너무나 넓다. 왕양명처럼 마음이 맑은 사람은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데, 마음이 혼탁한 사람은 마음대로 살아가면 삶이 엉망이 된다.


왕양명은 ‘마음대로’에서, 마음속의 ‘양지(良知)’를 진정한 마음으로 보았다. 양지, 잘 알 수 있는 마음이다.

크게 보면, 주자가 말한 성(性), 본성과 같은 말이나, 성이라는 말이 공리공담이 되어 왕양명은 양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양지는 우리 마음이 고요할 때 드러나는 마음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큰 거울과 같이 이 세상을 그대로 비춘다.


이 세상의 진리를 바로 알게 된다. 왕양명은 이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면, 진리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많은 제자들은 또 양지를 찾는데 골몰하게 되었다. 주자학처럼 공리공담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이탁오다. 이탁오는 양지 대신 ‘동심(童心)’이라는 말을 썼다. 동심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이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속의 아이, 어린 왕자는 말한다. “하지만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


이탁오의 공부법은 왕양명의 공부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사람은 생각이 많으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생각이 적다. 몸으로 살아간다. 항상 현재에 있다. 늘 카르페 디엠! 항상 현재를 한껏 누리고 있다.

이러한 아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다. 부처는 과거의 기억들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우리가 불행한 건,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들만 없으면 우리의 마음은 맑디맑다.


이 마음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문제는 또 동심이다. 유치한 마음을 동심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쉽게 눈물을 질질 짜는 아이의 마음을 동심으로 오해할 수 있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동심이다.


순수한 마음은 체험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존적이고 성숙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동심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크게 감동을 받았을 때, 마음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와 같을 때, 우리의 마음은 동심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삶은 진리 그 자체가 된다. ‘나이 서른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서른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항상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항상 동심에 머물러 있는지.



소 탄 아이가 시냇물에 첨벙첨벙!

저 너머엔 고운 무지개 솟아오르고


- 박지원, <길 가던 중 문득 갬> 부분



아이가 있어 하늘에 무지개가 솟아오른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아이가 깨어난 것이다.


이런 순간이 공자가 말한 도(道)다. 아침에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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